20년간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임 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누구를 위해서 생명을 안타깝게 던졌을까?
임씨의 유서에 따르면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 합니다.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 사찰은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는 별 잘못이 없게 된다. 그런데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은걸까?
임씨는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켜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임씨에게는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이나 선거관련 불법행위보다는 '국정원의 위상'이 더 중요하고 무거웠다는 얘기가 된다. 또 스스로 자료를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국정원 출신의 국회 정보위원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국정원은 '이 직원이 4일 간 잠도 안자고 일하면서 공황상태에서 착각하지 않았겠느냐'라고 자료 삭제에 대한 해명을 전하고 있다.
이는 국정원이 임씨에 대해 내부의 감찰까지 하면서 4일간 잠도 안재우고 해당 자료를 삭제하도록 방치 내지는 묵인했다는 걸 인정하는 대목으로 읽힐 수 있다.
이철우 의원은 브리핑에서 "이 직원은 자기가 어떤 (해킹) 대상을 선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타부서에서 해킹) 대상을 선정해 이 직원에게 알려주면 기술적으로 이메일에 (프로그램을) 심는다든지 그런 작업을 하는 기술자다. 대테러 담당자 이런 사람들에게 요청이 오면 이관을 할 뿐이다"라고 설명을 했다.
상부에서 또는 다른 부서에서 요청이 오면 해킹을 직접 실행하는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실행의 책임이 임씨에게 있겠지만 실제 책임은 불법해킹을 하도록 한 상급자나 지휘라인에서 져야 한다.
그런데 임씨가 모든 책임을 떠 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씨는 유서 마지막에 "앞으로 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정원 직원이 본연의 업무에 수행함에 있어 한치의 주저함이나 회피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썼다.
이를 뒤집어보면 '본연의 업무에 수행함에 있어 한치의 주저함이나 회피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 달라"는 건 임씨 자신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주저함과 회피함'이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조처해 달라"는 얘기도 국정원 지휘부에 대한 일종의 불만 표시로 읽힌다. 특히 이철우 의원이 "(임씨가 해킹)대상을 직접 선정하지 않는다"고 밝힌 부분과 임씨가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밝힌 부분은 논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언뜻 들은 내용으로는 고인은 해킹 프로그램을 도입할 때부터 RCS(리모트컨트롤시스템)을 운영할 때까지 그 팀의 실무자였다"면서 "그런 부분도 정치적 논란이 되니까 여러가지 압박을 느끼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도입과 운영의 문제는 임씨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 아니다. 검찰은 이미 국정원의 대선개입의혹 사건을 수사하면서 실무자들을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했다. 불법적인 행동을 했지만 지시에 의한 업무수행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국정원도 임씨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 내부에서 모든 책임을 임씨에게 떠넘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임씨 스스로 압박감을 견디기 못한 탓인지 그도 아니면 정말 자살이 맞는지까지 밝혀내야 할 사안이다.
전직 국정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임씨가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면서 "일은 위에서 시키고 모든 책임을 실무자에게 떠 넘겼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신경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유서도 이상하고, 믿을 수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임씨가 왜 죽어야 했는지 그 동기를 국정원이고 누구고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유서의 마지막에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누구에게 감사하다는 말일까? 무엇이 감사하다는 말일까?
원장님, 차장님, 국장님께
동료와 국민들게 큰 논란이 되게 되어 죄송합니다.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그리고 직원의 의무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 합니다.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습니다.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켜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포함해서 모든 저의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저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정원 직원이 본연의 업무에 수행함에 있어 한치의 주저함이나 회피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