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 ㈜케이퍼필름)의 개봉에 앞서 마련된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암살이 관객들에게 물음을 던지는 영화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고 했다.
'올해 광복 70주년에 맞춰 1930년대 독립군의 싸움을 그린 영화에 출연한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해 고민 끝에 내놓은 답변이었다.
"촬영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말자'는 감독님의 의도에 배우들도 뜻을 같이 했어요. 오히려 많은 물음을 던지는 영화가 됐으면 했죠. 연기에서 들끓는 감정의 과잉을 배제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객들이 생각하실 수 있게끔 여백을 만들자는 뜻이었죠."
이날 이정재는 극중 전지현이 연기한, 친일파 암살에 투입된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의 "알려 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는 대사를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어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몹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죠. 관객들이 영화를 봤을 때 하나라도 더 가져가시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건 영화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느꼈던 부분이죠."
"몸무게를 갑작스레 줄인 탓에 생긴 체력적인 부담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까지 이어지더군요. 촬영 내내 그 몸무게를 유지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치열하게 싸웠던 독립군의 고통을 아주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낮게 깔린 염석진의 목소리도 상대를 제압하는,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지닌 그의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였죠."
영화 암살의 이야기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이 점에서 "촬영에 앞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에도 공을 들였다"는 것이 이정재의 설명이다.
"1930년대, 40년대를 기록한 자료를 무척 많이 봤어요.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수많은 사건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다큐멘터리 위주로 접했죠. 자료를 보면서 '물지 못할 거면 짖지도 말아야지'라는 말이 눈에 띄었어요. 몹시 인상적이었죠. '이걸 염석진의 대사로 녹여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감독님께 제안했는데, 한 장면에 절묘하게 집어넣으셨더군요."
그는 자신이 연기한 염석진을 두고 "겉으로는 강하게 여겨지지만, 내면을 보면 겁이 많은 인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암살에서 염석진은 허구의 영화적 캐릭터이지만, 우리네 굴곡 많은 근현대사를 돌아봤을 때 충분히 있었을 법한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정재 역시 "염석진을 연기하면서 그가 실존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염석진 역시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한국이라는 몸의 한구석에 남아 있는 상처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무리 숨기려 애써도 결코 숨길 수 없는 흉터 말입니다. 민낯 같은…."
그만큼 이정재는 염석진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해 있었던 듯했다.
"제가 해 온 모든 역할이 소중하지만, 암살의 마지막 촬영 날 염석진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몹시 서운했죠. 이제는 그에게서 많이 빠져나왔습니다. 지금 이렇게 한 발 떨어져서 그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고 있잖아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