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로몬] 2012년 2월, 원세훈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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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국정원장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5163부대의 해킹프로그램(RCS) 구입 의혹이 어쩌면 '퍼즐 맞추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해당 프로그램 구매 시점이 지난 총선, 대선과 묘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지금까지 알려진, 다수의 트위터 계정을 이용한 단순한 리트윗(댓글달기)이 아니라 RCS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이뤄졌다면 이건 정국을 뒤흔들 '뇌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국정원은 지난 총선을 앞둔 2012년 2월 해당 해킹 소프트웨어를 구입했고, 같은 해 10월엔 기무사가 비슷한 감청장비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12년 2월은 국정원이 문제의 심리전단을 3차장 산하의 독립부서로 만들고 조직을 확대한 시기입니다. 이것도 우연의 일치인가요?

이런 와중에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실제 7월 14일 열린 국회 정보위에서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누가 결정했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이병호 국정원장은 "그 정도의 권한은 (당시) 원장일 수 밖에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국정원의 수장이었던 원세훈 전 원장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현재 구속수감중입니다.

◇ 7월 16일, 대법원을 주목하라

대법원은 7월 16일 국가정보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상고심을 선고할 예정입니다.

대법원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법원이 국정원법, 선거법 위반까지 인정한 2심 판결을 확정할 경우에는 2012년 대선의 성격이 지금과는 사뭇 달라집니다.

국정원을 동원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을 사법적으로 인정한 것이어서 청와대와 여당에 직격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법무장관 때 원 전 원장에 대해 선거법 적용을 반대했던 황교안 총리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질 가능성이 큽니다. 총리 이후 더 이상의 정치적 행보를 하기가 힘들다는 뜻입니다.

이와는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경우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렇게 된다면 그동안 '국정원 대선 개입'을 연일 주장했던 야권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렇게돼도 역풍은 사법부와 여권이 맞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긴 합니다.

◇ 1, 2심의 엇갈린 판결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2월 9일 오후 항소심 선고 공판 출석을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원 전 국정원장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사진=박종민 기자)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핵심 쟁점은 국정원 직원들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반대 댓글을 단 것이 통상적인 대북 심리전의 일환인지 아니면 불법인지 여부입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국정원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해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올해 2월 공직선거법 위반까지 유죄로 인정해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습니다.

1, 2심의 차이는 대선 정국이라고 할 수 있는 2012년 8월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의 트위터 활동이 현저히 증가한 것을 어떻게 해석했느냐입니다.

1심은 선거운동 활동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특정이 안됐다고 본 반면 2심은 다수의 트위터 계정으로 팔로워를 늘리는 등 계획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습니다.


◇ 원세훈 전 원장이 풀어야할 숙제는 남았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긴급 주문을 한 내용이 담긴 이메일 (사진=위키리크스 캡쳐)
7월 16일 대법원 선고 결과와 상관없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다시 언론 지면에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 업체로부터 '수상한 계약'을 했고, 앞서 얘기했듯이 계약의 최종 결재자가 원 전 원장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국정원은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고, 이번 해킹 프로그램 구매 역시 "대북, 해외 첩보용" 또는 "연구용"이라고 발뺌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터지면 '북한'을 갖다대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 박 대통령의 비공개 '국정원 방문'

이 와중에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국정원을 비공개 방문했습니다. 이상한 건 대통령의 국정원 방문이 즉시 공개된 것도 아니고 열흘이나 지나서야 뒤늦게 알려졌다는 점입니다.

뉴스를 보면 방문 이유가 '격려 차원'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좀 이상합니다.

집권 초기부터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상당한 거리를 뒀습니다.

2013년 6월 24일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며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박 대통령은 야당의 요구에 준하는 강도높은 국정원 개혁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 국정원은 대통령의 그런 발언 이후에도 강도높은 쇄신은 커녕 RCS 유지, 보수 비용을 이탈리아 해킹 업체에게 지불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무엇때문에 그렇게 멀리하던 국정원에 몰래가서 격려까지 하고 왔는지 도무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나서 박 대통령은 7월 13일 평소 소신과는 다른 '광복절 특사'를 언급했습니다. 재벌들에 묻어서 설마 '그 분'까지 특사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죠? (일부에서 '7월 16일이 대법원 선고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얘기를 해서 순간 '노파심'이 발동했습니다.)

◇ 원세훈은 누구인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공소사실을 보면 원세훈 전 원장의 발언에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2012년 2월 17일 부서장 회의에서 원세훈 국정원장은 "진짜 금년 한 해가 아주 중요한 해 아닙니까. 이제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고, 종북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서 어떻게든지 다시 정권을 잡으려 그러고…야당이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면 강에 처박아야지. 금년에 잘못 싸우면 국정원이 없어지는 거야. 여러분들 잘 알잖아"라고 말했습니다.

행시 출신인 그는 공무원 경력 대부분을 서울시에서 쌓았고 이명박 서울시장 밑에서 승승장구해 이명박 정부 첫 행안부 장관에 임명됐습니다.

행안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에는 본인의 병역 면제와 아들을 서울시 산하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군 복무 시키면서 사법시험을 두번씩이나 치르게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장관직을 내려놓은 후부터는 MB정부 말기까지 4년동안 국정원장에 재직했습니다. 원 전 원장은 퇴임사를 통해 "부임 이후 과감한 쇄신을 통해 국정원이 '확고한 정치 중립' 아래 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을 지키면서 음지에서 국익증진 및 국격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저는 언제 어디서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원 전 원장님, 이제 마지막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RCS에 대해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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