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합병을 결정지을 임시 주주총회 D-2인 15일부터 전사적 역량을 총결집해 총력대응체제를 가동했지만 헤지펀드 엘리엇은 삼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긋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대조적이다.
◇합병무산은 삼성그룹에도 삼성물산에도 재앙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슈가 불거진 이유는 삼성그룹이 두 개 회사의 합병을 추진하자 헤지펀드 엘리엇이 합병비율에 문제가 있고 주주이익에 반한다고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이 두 회사를 합병하고자 한 것은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 목적이다. 잘 알려진 것 처럼 삼성그룹은 환상형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지배체제가 구축돼 있고 그 중심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전자 등의 회사가 위치해 있다.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현 회장 때까지만해도 자산과 매출,수익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오늘날 그룹의 핵심회사인 삼성전자의 단독 연 매출액 규모만 200조원을 훌쩍 넘어서다 보니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 사고팔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14일 현재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80조원, 이 가운데 1%를 사들이는데만 1조8천억원이란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경영권을 승계할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을 겨우 0.57%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삼성이 선택한 방법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주식을 다량 보유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사실상 지주회사로 세우는 것이었다. 두 회사를 지배하게 되면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권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두 회사 지분을 16.40%보유중이다.
엘리엇의 훼방으로 합병이 무산될 경우 핵심계열사 주식을 직접 사모아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경영승계가 훨씬 어려워지는 것도 문제지만 종국에는 헤지펀드 끼리 연합해 삼성전자 경영에도 간섭할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러면 국내산업에 미치는 파급영향도 적지가 않다는 것이다.
◇"엘리엇, 구조조정 고배당정책으로 수익극대화 나설 것"
그룹도 그룹이지만 합병 대상이 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엘리엇을 비롯한 외국계 펀드들이 쥐락펴락하는 신세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비단 한국 뿐아니라 아메리카와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특정회사 주식을 집중 매집한 뒤 회사경영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실현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는 17일 두 회사의 합병이 좌절될 경우를 가정해 보면, 엘리엇이 국내외 주주들을 상대로 높은 지지를 끌어내 지분경쟁에서 삼성그룹을 누른 상태이기 때문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경영에 대한 전방위적 간여는 불가피한 수순이 된다.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은 건설과 상사부문은 구조조정 1순위에 오를 수 있고 삼성전자 보유지분을 근거로 배당을 최대한 늘리려 애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아예 배당정책을 바꿔 회사재산을 매각해 배당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삼성측의 주장이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만 16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삼성그룹의 A 임원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사업구조조정은 물론이고 자산을 매각하거나 배당정책에 대한 변화를 시도하는 등 회사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이 벌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고 말했다.
◇깡통 차게되는 건 소액주주
교보증권 백광제 애널리스트는 "합병 부결시 합병발표 이전 주가로 회귀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유는 실적악화, 현물배당 등 요구사항의 관철 어려움, 헤지펀드와 소액주주의 이익방향성 불일치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가정을 전제로 달긴 했지만 "엘리엇이 주식 매수를 통한 단방향 매매는 하지 않았을 것이며 지난 주가 상승(75,000원~80,000원)시 주식 공매도나 삼성물산 주식선물매도를 통한 이익 확정을 해두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헤지펀드들이 여러가지 수단을 동원해 이른바 손해볼 짓을 하지 않는 반면에 소액투자자들은 속수무책이라는 주장이다. 삼성그룹의 한 중견간부도 "결국 깡통을 차게되는 것은 소액주주다. 소버린도 8천-9천억원 먹고 빠질때 주가가 죽 빠져서 닭쫓던개 지붕쳐다 보는 격이 됐다"고 말했다.
◇판도 뒤집을 변수는 없다…주주 맨투맨 접촉에 '올인'
주주 총회가 이틀 앞으로 임박하면서 그동안 변수로 거론됐던 것들은 대체로 정리가 됐다. 이 말은 예기치 않은 변수가 돌출해 판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졌다는 의미다.
일단 지분율 11.21%로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두 회사 합병쪽으로 입장을 정리해 세대결의 균형추가 삼성쪽으로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는 14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동의한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결정을 놓고 토론을 벌였지만 반대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국민연금 결정을 사실상 추인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의 삼성물산 임시주총 소집 및 결의금지 가처분 항고심 재판부는 16일 결정내용을 발표하기로 했는데 원심의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건 주주총회장에 직접 참석할 외국인 주주와 국내 개인.소액주주표의 향배. 삼성그룹은 전사적 대응체제를 구축해 이들의 지지를 모아내는데 총력전을 펴고 있다. 20%를 상회하는 개인 투자자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홍보전도 뜨겁다.
이런 가운데 국내 경제단체들의 삼성밀어주기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 협회는 15일 해외 헤지펀드 문제와 관련해, 공정한 경영권 경쟁 환경조성을 위한 개선의견 및 상장회사 호소문을 발표한다.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이 주최한 14일 토론회에서 김선정 동국대 교수는 투기자본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주주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감성적 대응이 아닌 제도적 법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고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도 경영권 방어수단 강화 필요성을 역설하며 포이즌 필과 차등의결권 도입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