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활동에 쓸 도구를 왜 '내곡동 주소'로 샀을까

해킹프로그램 구입 목적 두 가지 추론

국정원 전경(자료사진)
국정원은 왜 지난 4년여 동안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의 해킹 프로그램을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구입했을까?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 구입 목적은 두 가지로 추론할 수 있겠다. 하나는 해외 첩보공작용이고 두번째는 국내 정보공작용 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해킹 프로그램 구입은 둘 중 어느 것일까?

여러 정황으로 볼때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은 '국내 정보공작용'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첫째, 국정원이 나나테크의 중개로 해킹 도구를 구입할 때 주소지가 서울 내곡동으로 돼 있는 점이다. 내곡동은 주지하다시피 국정원이 소재한 곳이고 일반적으로 '내곡동'은 국정원의 별칭으로 사용된다.

해외 공작용으로 구입하면서 국정원 별칭이나 다름없는 '내곡동' 주소지를 공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치밀성이 너무 떨어진다.

해외 정보수집을 위한 해킹 프로그램이라면 더욱 비밀을 요했을 것이다. '내곡동'이 아니라 말레이시아 등지의 해외 지역 한 도시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놓고 그곳으로 송달하도록 했어야 하지 않을까.


더욱이 국정원은 해킹프로그램을 서울 강남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시연 받았다. 첩보 수집을 위한 '비밀 테크놀러지'를 이런식으로 시연한다면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다.

둘째, 국정원은 이탈리아 해킹팀과 1년간의 거래·시연 과정을 거쳐 2011년 12월 해킹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구입한다. 이때 거래 대금을 지불한 곳이 이른바 5163부대다. 5163부대와 7452부대가 국정원 소속이라는 사실은 국정원의 불법행위가 있을때마다 단골로 등장한다.

국정원 불법 댓글사건에서 심리전단 소속의 김 모 요원이 사법처리되자 당시 변호사 비용을 지불했던 곳이 5163부대다.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은행원들조차 5163부대가 '국정원 계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시중에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만큼 알려진 비밀 아닌 '비밀조직'이다.

지난 2013년 국가 보훈처가 안보관련 DVD를 제작한 사실이 드러나 대선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때도 동영상 제작을 의뢰받아 납품한 김철희씨(가명)는 "보훈처 DVD 가운데 3개는 내가 만들어 국정원에 납품한 것과 똑같다"라고 증언했다.

김씨가 국정원에 동영상을 납품하고 받은 세금계산서에는 명의가 7452부대로 되어 있었다.

셋째, 만약 국정원이 국내 공작용이 아니고 해외 첩보용으로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면 기실 얻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한 보안전문가는 "원격통제가 가능한 악성코드를 감청 대상의 휴대폰에 심으려면 시스템이 다른 외국에서는 무용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국내 정보공작용으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해외공작이든 국내 공작이든 공작팀별로 철저히 별개로 움직이게 하고 비밀이 보장된다.

전직 정보당국 관계자는 "국정원 해외공작파트가 해외의 그 세계에서 널리 알려진 해킹업체로부터 스파이 프로그램을 구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실명으로 구입하고 국정원이 금방 드러나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해킹 도구는 국내 공작용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 국정원은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총 20명분의 RCS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민간사찰용, 대선용 사용 의혹에 대해선 전면 부인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14일 국회 정보위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업무보고에서 "2012년 1월과 7월, 이태리 해킹팀으로부터 총 20명분의 RCS소프트웨어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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