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다

에디슨 발명에 필적하는 21세기의 대표적 문명의 이기를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스마트폰이다.

국민 대다수는 스마트폰 알람으로 하루를 시작해 스마트폰으로 TV와 라디오를 즐기면서 출근한다. 버스요금도 스마트폰으로 결제하고, 모르는 길은 네비게이션 앱의 안내를 받는다. 이동중에는 카카오톡이나 이메일로 업무를 보거나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 간혹 좋은 경치가 나오면 사진도 찍는다. 일정표 관리도 간단한 메모도, 심지어 은행거래도 모바일에서 이뤄진다.

한 개인의 모든 활동과 인간관계, 생각 등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는 곳이 바로 스마트폰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공간을 누군가 24시간 들여다보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빅 브라더'가 감시 통제하는 사회는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서 움직이는 곤충과 같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국제 해커그룹의 폭로로 공개된 이탈리아 해킹업체의 내부 서버 내용이 일파만파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국정원이 지난 2012년 초 이탈리아 해킹업체인 '해킹팀(Hacking Team)'으로부터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실시간 도감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이 이 과정에서 드러났다. 수 억원을 주고 사들인 해킹프로그램 RCS는 다른 사람의 컴퓨터나 모바일에 악성코드를 몰래 심어 24시간 감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스파이웨어가 감시하는 대상은 PC와 모바일의 앱, 주소록, 카메라, 마이크, SNS 등 거의 모든 기능을 망라한다.

이 프로그램이 불순하게 활용된다면 누구나 유리상자 안의 곤충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특히 내부자료를 보면, 국정원은 '서울대 공과대학 동창회 명부'라는 한글 파일에 해킹용 악성코드를 심어달라고 해당 업체에 부탁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또 천안함 관련 영어제목 워드파일에도 악성코드를 심어달라고 부탁한 대목이 나온다. 이 파일은 한 언론사 기자가 '박사님'이라는 사람에게 질문하는 형식의 글이다. 두가지를 종합할 때 국정원이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 서울대 공대 출신 박사에게 악성코드를 심으려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사찰의 대상이 북한 등 외부가 아니라 국내 민간까지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다는 의혹을 짙게 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국정원은 휴대전화 도감청장비가 없고, 통신회사도 협조하지 않는다며 우는 소리를 냈지만, 뒤로는 은밀한 거래를 진행해 온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우선 국가기관이 해킹을 통해 임의로 정보를 빼내는 것은 실정법(정보통신망법) 위반이다. 이는 국정원의 거래를 중개한 나나테크도 이탈리아 업체와의 이메일에서 'illegal(불법)'이라고 인정했다.

해킹을 통한 사찰은 헌법에도 위배된다. 헌법 17조와 18조는 모든 국민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 그리고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간첩이나 마약사범, 국가안보 등 각종 범죄 수사와 관련해 현행법은 영장에 의한 도감청을 엄연히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 구매 파문이 사실이라면 영장에 의하지 않은 사생활 엿보기가 언제든 자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광범위한 신종 민간인 사찰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해킹프로그램의 구입여부와 사용처를 포함한 진상규명과 함께 필요하다면 검찰 수사도 즉시 이뤄져야 한다.

국가안보와 국익보호라는 국가정보기관의 존재의 필요성은 인정해야겠지만, 국민이 초법적인 기관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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