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DJ 최성원이 30년 넘게 알고 지낸 선배 DJ 김광한을 정의하는 단어는 ‘아이’였다.
현재 TBN 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를 진행 중인 최성원(한국방송DJ협회 미디어국장)은 한국의 3세대 DJ이다. 그의 아버지가 1세대 DJ 최동욱, 고 김광한은 그 중간에 있는 2세대 DJ였다.
한국에서 팝음악이 전성기였던 1970~80년대에 김광한은 대표 팝 음악 전문가였다.
최성원은 그런 김광한과 함께 DJ 공부를 했고, 또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 최성원은 “친구이자, 스승 그리고 삼촌 같은 사람이었다”고 김광한을 설명했다.
DJ 최성원에게 김광한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들어봤다.
= 개인적으로 30여 년 넘게 알고 지내는 사이이다. 나는 아저씨라고 부른다. 같이 DJ 공부를 하기도 했다. 내게는 스승이자, 삼촌, 친구같은 분이다.
▶ 어떻게 가까워지게 됐나.
= 내 아버님이 1세대 DJ 최동욱이다. 김광한의 스승이다. 김광한은 늘 자신이 DJ를 하게 된 이유로 아버지를 꼽았다. 나 역시 같은 말을 한다. 김광한이 있어서 방송을 하게 됐다. 아버지가 1세대라면, 김광한이 2세대, 내가 3세대 DJ이다.
▶ 인간 김광한은 어떤 사람이었나.
= 방송에 대해서는 발음부터 시작해 모든 게 굉장히 꼼꼼했다. 허투루 넘기는 일이 없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도, 모든 걸 쏟다시피 하며 가르쳤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김광한은 인자한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는 밥을 사주겠다고 하고, 뜬금없이 용돈을 주고, 일하다가도 문득 연락해서는 잘 살고 있지라고 묻곤 했다. 내 사람이다 싶으면 다 꺼내주고, 항상 관심을 보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인간적으로 외로웠던 분이기도 하고.
▶ 외로웠다고?
= 슬하에 자녀가 없고, 감성적으로도 다른 사람에 비해 순수한 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그래서 더 사람들에게 친근감 있게 잘해주려는 마음이 있었다.
▶ 막역한 사이였던 거 같은데, 별세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을 것 같다.
= 생방송 하는 중에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런 소식에 순간 어안이 벙벙하더라. 나뿐 만이 아닐 거다. 가족들도 당황했을 거고, 후배들도 많이 놀랐다.
= 한 지자체와 음악제를 준비 중이었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음악 축제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나도 동참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열과 성을 다해 준비했는데 이렇게 돼서 안타깝다.
또 팝의 저변을 확대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본인이 1980년 팝 전성기 시대해 활동해서 더욱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전성기를 다시 만들어 보려고 했다. 해외 옛 아티스트에 대한 공연 기획하고 유치하려 했고, 팝 전문 디제이들이 그에 걸맞게 활동하기를 바랐다.
▶ 김광한의 후배들이 많을 텐데. 김광한을 기리는 활동 같은 건 계획이 없나.
= 나와 같이 김광한 밑에서 배운 사람들이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 상황을 계기로 그런 선배들과 의기투합해서 방송 DJ라는 걸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기회로 삼아야 할 것 같다. 그게 김광한이 바라던 일이기도 하니까. 방송 DJ라는 직업은 직업이 그냥 가수이거나 배우인 분들이 잠시 앉았다 가는 자리가 아니다. 음악을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 DJ 김광한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 영원한 아이. 김광한은 음악을 사랑한 아이였다. 평생을 음악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그런 아이였던 사람이다. 음악 하나에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우는, 음악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사람이 김광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