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배우' 곽시양, 절정을 향해 쏴라

[노컷 인터뷰] "'배우' 타이틀 붙는 것 어색해…뿌리깊은 배우 되고 싶다"

배우 곽시양. (스타하우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세 개의 작품, 두 번의 주인공. 경력은 많지 않지만 내공은 탄탄하다. 비밀을 간직한 우등생 소년부터 사랑앓이 중인 대학생 청년까지, 배우 곽시양은 적은 옷이라도 제대로 갈아입을 줄 알았다. 정작 본인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다'며 멋쩍게 웃을 뿐이었지만.

영화 '야간비행'에서의 그를 기억한다. 소년과 남자의 경계에 선 얼굴에서는 의외로 울림이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면 데뷔작으로는 파격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맡았던 용주는 동성애자라는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방식이나 감정이나 똑같은 것 같아요. 특별히 다른 건 없지 않나요. 저는 이성을 좋아하지만 동성을 좋아하는 분들의 마음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가장 힘이 됐던 생각은 그거였어요."

어느 날 갑자기 주연을 꿰찬 것 같겠지만, 그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는 아니다. 계기는 단순했다. 어릴 때부터 연예인을 막연히 꿈꿔 오다가, 군대에서 무심코 드라마를 봤는데 갑자기 뭔가 끓어 올랐다고.

"어렸을 때부터 연예인이 하고 싶었는데 어떤 분야에서 하고 싶은지 잘 몰랐어요. 시간을 많이 허비하고 방황도 하다 24살이 돼서 군대를 갔어요. 제대하기 직전에 드라마를 보는데 나도 저기 카메라 앞에서 놀고 싶고,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더라고요. 가슴 속에서 뭔가 찌릿찌릿, 끓어 오르는 듯한 느낌? 제대하고 나서 연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그 이후부터는 트레이닝의 연속이었다. 10대 역할도 어렵지 않게 소화 가능한 동안이지만 그의 실제 나이는 내일 모레면 서른인 스물 여덟이다. '야간비행'이 지난해 개봉했으니 또래 배우들보다는 한참 늦은 출발인 셈이다. 물론, 1년 만에 당당하게 주인공을 맡은 것을 생각하면 성장 속도는 초고속이었다.

"제대하자마자 연극을 한 편 짧게 하고, 그 전부터 알고 있었던 저희 회사 대표님을 찾아뵈었죠. 힘들 때 마다 가서 인사하고 조언도 구하고 그랬거든요. '진짜 배우 해보고 싶다'니까 살을 빼고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진짜 빼서 갔죠. 그랬더니 근성은 있다면서 같이 (일)하자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다른 선배님께 연기를 배우다가 혼자 많이 대본을 읽었어요. 이 말을 왜 할까, 내게 돌아오는 피드백은 어떻게 표현할까. 물음표를 달면서 공부했어요."

배우 곽시양. (스타하우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엠넷 음악 드라마 '칠전팔기 구해라' 첫 주인공 역을 따내면서도 이런 근성은 어김없이 발휘됐다.

"오디션을 한 다섯 번 봤어요. 세 번째 봤을 때 억울하더라고요.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었죠. (웃음) 매번 갈 때마다 노래 하나, 춤 하나 수행해서 보여드려야 되는데 그렇게 최선을 다했던 모습을 제작진들이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노래와 춤을 능숙하게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만큼,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부담감이 많았죠. 드라마를 잘 이끌고 갈 수 있을까. 대본을 손에서 안 놨어요. 열 번, 스무 번? 그 이상 봤던 것 같아요. 비원에이포 진영이나 효린 누나나 워낙 쟁쟁한 가수들이라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고요. 폐는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와 다른 분야인 노래와 춤은 쉽지 않았다. 그는 당시를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노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여유롭게 촬영한 것이 아니라 서로 맞춰 볼 시간도 없었고요. 보컬이랑 안무, 악기 등은 사전에 레슨을 받고 연습하기는 했어요. 그래도 잘 못하죠."


드라마를 통해 여러 가수들을 만나면서 가수라는 직업에 흥미를 느끼지는 않았을까. 조금이나마 그 세계를 경험한 곽시양은 고개를 내저었다.

"전 아이돌 가수는 못할 것 같아요. 제가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고 간접적으로 해봤을 뿐인데 이 친구들은 쉴 틈이 없더라고요. 흐름이 너무 빠르고, 요즘에는 음원으로 노래가 나오니까 잊혀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잖아요. 그런 부분이 힘들다는 것을 느꼈고, 어떻게 저렇게 많은 것들을 준비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배우 곽시양. (스타하우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직은 예능도, 노래도 할 생각이 없다. 일단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것이 먼저라 그렇다.

"제가 말을 하다보면 지루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토크쇼는 못 나가겠어요. 차라리 '정글의 법칙'이나 '진짜 사나이'처럼 몸 쓰는 건 괜찮을 거 같아요. 일단 연기에만 집중해야죠. 제 이름 앞에 '배우'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워요. (그러지 않게) 입지를 굳혀야 될 것 같아요. 욕심이 많으니까 여러 작품도 하고 싶고, '배우' 곽시양이 부끄럽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하고 싶은 작품을 물어보니 줄줄이 이야기가 나온다. 동안인 외모 때문인지, 나이에 비해 그는 어린 역할을 주로 도맡아 왔다. 그러나 아쉬운 마음은 없다.

"좀 어색하기는 해도 (어린 역할을)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요. (웃음) 드라마 '파스타' 이선균 선배가 하신 역할도 해보고 싶고, 의사나 검사 같은 전문직 역할도 좋아요. 달달한 로맨스도,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느와르도 좋고…. 아직은 소같이 일할 때라 바로바로 일하고 싶어요. 제가 지금 시나리오를 받는 위치는 아니고, 오디션으로 문을 두드려서 기회를 얻는 입장이거든요. 계속 도전해야죠."

롤모델은 배우 최민수. 그는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의 최민수 연기를 이야기하며 눈을 빛냈다.

"작품에서 보면 되게 호랑이 같고 무서우실 것 같은데 정이 많으실 것 같아요. 연기하시는 걸 보면 일단 배울 것이 너무 많고요. 감히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오만과 편견' 보면서도 '연기는 저렇게 뭔가 맛깔나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시청자를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진실됨이 묻어 나왔어요."

'악플보다 무플이 상처'라는 그는 자신의 연기에는 유독 짠 평가를 내렸다. 보편적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기 천재가 아니니까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아직 제 연기는 맛깔나지 못한 것 같아요. 말할 것도 없이 전부 갈고 닦아야죠. 연기에 답은 없다고 하지만 기준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뭔가는 필요한 거죠. (제 연기는)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댓글로 제게 쓴 소리를 한다하더라도, 제가 연기 천재는 아니니까요. 맞춰가면 되는 거죠."

처음을 비상업영화로 시작한 만큼, 거기에 대한 애착도 상당하다. 후일 성공을 기약하며 이미 배우 유지태와 독립영화에 도움을 주기로 약속을 마친 상태다.

"유지태 선배님과 약속한 게 있어요. 제가 지금보다 더 잘되면 독립영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일을 꼭 하겠다고요. 독립영화계가 아무래도 힘들어요. 한여름에도 선풍기 한 대로 버티는 독립영화 상영관이 있을 정도로 시설도 열악하고, 국가적인 지원을 못 받으면 문을 닫는 곳도 많아요. 배우인 제가 후배 배우들이나 관객들에게 좀 더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는데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요."

배우 곽시양. (스타하우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실제 곽시양의 성격은 어떨까. 그는 장난도 애교도 많지만 무엇보다 역경에 강하다. 문제를 '정면돌파'해서 해결하는 대범함도 있다.

"원래 제 본모습은 장난기 많고, 친해지면 애교도 있고 그래요. 낯은 가리지만요. 도전을 이겨내는 것도 재밌죠. 군대에서 힘들긴 했는데 다시 가라고 하면 갈 수도 있어요. 일이 터졌으면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지, '어떻게 하지' 발만 구르는 건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생각을 넓히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저 자신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들보다 '이건 내가 낫다' 싶은 걸 물어보니 대뜸 '군대'를 이야기한다. 납득은 간다. 군대에 다녀오지 못한 남자 스타들에게 '2년 공백기'는 길고도 길다. 하나를 더 부탁하니 이번엔 '목소리'를 꼽았다.

"얼굴은 그렇지 않은데 목소리가 더 남자다운 느낌이 있어요. 처음에는 호감이 가는 목소리인 줄도 몰랐는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깨달았어요. 목소리 덕 본 것도 있죠."

쉬는 시간에는 야구 아니면 영화다. 벌써 6년 째 야구단에서 활동 중이라며 웃는 그에게 야구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엿보였다.

"'천하무적 야구단'을 6년 째 하고 있는데 포지션은 다양해요. 야구 아니면 집밖에 안 나가요. 집에서는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틀어 놓고요. 문득 눈에 띄면 한 편을 다 보죠. '이 장면을 이렇게 쓸 수도 있네?'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저는 좋아하는 작품, 봤던 작품을 많이 봐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너무 좋아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태양의 절정까지 그는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걸어갈 예정이다.

"지금 저는 오전 7시에서 7시 30분 정도에 있는 것 같아요. 아직 태양이 떠오르는 시간인데, 가장 뜨거운 시간인 정오에서 오후 2시로 올라가야죠. (웃음) 토끼처럼 빨리 가지 않고 거북이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가면 더 단단한 뿌리깊은 배우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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