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3권분립이라는 대의명분과 내년 총선에서 자리보존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이해득실을 따진 결과 후자를 택한 것이라는 평가다.
◇ 싱겁게 끝난 與 의원총회 "사퇴 요구 봇물"
이날 의원총회에는 모두 33명의 의원들이 발언자로 나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런데 예상외로 유 원내대표 사퇴불가론을 편 의원은 정두언, 김용태 의원 등 일부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부분의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의 사퇴가 당청관계를 복원과 향후 총선 승리, 그리고 정권재창출의 길이라는 논리를 펴며 유 원내대표 사퇴를 압박했다.
결국 표 대결 전망까지 나왔던 이날 의총은 별다른 이견없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권고하는 것으로 뜻을 모으며 싱겁게 끝났다.
전날까지만 해도 유 원내대표 사퇴를 전제로한 의원총회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보이콧을 시사했던 친이계 중심의 재선의원들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날 의원총회를 받아들였다.
한 친박계 재선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총선과 대선 승리의 길이라는데 많은 의원들이 동의했다"면서 "4시간여 동안 큰 잡음없이 원활하게 토론이 이뤄졌다"고 의원총회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의원총회 결과와 이어진 유 원내대표의 사퇴는 수평적 당정관계를 부르짖지만 결국은 대통령의 뜻에 좌지우지되는 집권여당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정치인의 거취는 옳고 그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한 김무성 대표의 의원총회 발언도 뜯어보면 지금은 박 대통령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해석하면 유 원내대표 스스로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대통령이 나서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일단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 대통령의 與 원내대표 사퇴 요구는 3권분립 훼손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대표를 공개비판하고 이것이 사퇴요구로 이어지는 상황은 헌법상 명시된 3권분립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불만들이 터져나왔다.
의원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원내대표를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나가라 마라 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한 친이계 재선의원은 "대통령의 국회와 집권여당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문제"라며 "독재정권도 아닌 마당에 행정수반이 앉아서 지시나 하고 하는게 말이나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 기자회견에서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의중을 읽은 친박계가 유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 압박 강도를 높이면서 이같은 불만들은 곧 소수파의 의견으로 전락하고 유 원내대표 책임론만 부각됐다.
이는 3권분립이 명목상 헌법정신에 불과할 뿐 집권여당 위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있는 현실을 새누리당 의원들도 곧 직시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명지대 정치학과 신율 교수는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의 발언은 유 원내대표를 지목했다다기 보다는 여권의 권력지형을 자신이 새로 짜겠다는 것"이라며 "결국 대통령의 뜻이 다 관철됐다"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오늘 의원총회는 살아있는 권력의 뜻을 집권여당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당연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 朴, 콘크리트 지지층 없이 총선 승리 불가
새누리당 의원들 상당수는 유 원내대표가 계속 버틸 경우 당청관계가 악화되고 이는 결국 내년 총선에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각 의원들은 지지율이 아무리 하락했다고 해도 30%의 고정지지층을 가진 박 대통령과 척을 질 경우 총선에서 승산이 없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 당청관계 악화로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사퇴하면 현 체제가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김무성 대표는 내년 총선 공천권 행사는 고사하고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유 원내대표의 목을 칠 수밖에 없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는 당청간 수평적 관계를 주장하는 자칭 의회주의자"라며 "하지만 현 상황에서 대통령과 맞설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게 더 많다는 것을 직시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물론 유 원내대표 사퇴에 반발하던 김무성계도 현 체제가 무너질 경우 내년 총선 공천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다급함에 유 원내대표에게 등을 돌렸다
그 결과 지난 7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재차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자 욕설까지 하며 김 최고위원을 비판했던 김무성계는 이날 의총에서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