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녹차카펫' 드리운 한강, 당분간 더욱 심각

한강하류 어민들 죽은 숭어떼 건져내며 한숨만 푹푹


지난달 28일 서울 한강 하류지역 신행주대교 인근을 뒤덮은 녹조는 '녹차라떼' 수준을 넘어 '녹차카펫'으로까지 불렸다. 단순히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게 아니라 녹색 물 위로 엉겨붙은 녹조의 두께가 반뼘이나 됐고 신행주대교 인근 어민들은 조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용존산소량 감소로 숭어는 하얀 배를 하늘로 향한 채 곳곳에서 떼죽음을 당했다. 어민들은 그물을 치는 대신 죽은 숭어들을 건져냈다.

며칠이 지난 이달 2일 다시 찾은 신행주대교 부근에는 녹조의 흔적은 여전했지만 녹조량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독성물질을 포함한 남조류 대부분이 성산대교와 양화대교, 마포대교 등 한강 상류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데다 한강 하류쪽에서 거세게 올라오는 바다 사릿물때의 영향도 받았다. 하지만 물때가 바뀌는 이번주 후반에는 다시 밀려 내려올 거라는 게 어민들 말이다.

자연발생하는 녹조는 통상 높은 수온과 가뭄, 오염원 유입 등으로 짧은 시간에 급속하게 개체수를 늘린다.

신행주대교 인근에서 수십년간 고기를 잡아온 어부 심화식씨는 가뭄과 높은 수온 탓만 하는 환경부와 서울시를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심씨는 "가뭄도 원인이겠지만 녹조의 영양분이 되는 오염 물질들이 서남하수처리장과 난지하수처리장을 통해 유입되면서 녹조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씨는 또 "정부와 서울시 등은 가뭄 등 자연현상 탓만 하는데 하루에 수백톤씩 한강으로 들어오는 생활용수가 제대로 정화처리되지 않아 한강 하류부터 녹조가 생기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흔히 영양염류로 분류되는 인과 질소 등은 녹조 등 식물플랑크톤의 개체수 증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생활용수로 사용된 뒤 정화처리돼 한강으로 방류되는 물 속에 많이 포함돼 있다.

실제로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방화대교 남단에 있는 서남물재생센터(하수처리장)와 마곡철교 북단에 있는 난지물재생센터를 배를 타고 돌아보니 녹조 비상이 걸린 가운데도 정화처리된 생활용수는 한강으로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울시는 정부에서 한강 녹조 방지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총인저감시설과 합류식하수관거월류수(CSOs) 저류조 건설에 실제 국비지원이 전혀 없어 서울시가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총인처리시설은 조류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질소와 인 등을 감소시켜 수질을 개선하는 장치이고, CSOs 저류조는 하천으로 스며드는 오염된 빗물을 미리 저장했다가 처리해 오염원이 바로 한강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일부에서는 신행주대교 인근 김포대교 아래에 설치된 신곡수중보가 물을 가두는 역할을 해 물 순환이 그만큼 늦어지면서 녹조가 빠르게 증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김학진 서울시 물순환기획관은 3일 서울시에서 브리핑을 열고 "한강 녹조의 가장 큰 원인은 예년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강우량"이라면서도 "신곡수중보가 물 흐름을 막아 일정 정도 (녹조증식에) 영항을 미친 것은 맞다"고 말했다.

◇ 성산대교 시민 "녹색 석유를 뿌려놓은 것 같아요"

2일 오후 신행주대교 인근에서 녹조가 사라질 무렵, 성산대교 북단 망원시민공원 인근 상황은 심각했다. 며칠 전 신행주대교와 마찬가지로 녹색 거품이 부글거리고 매캐한 악취까지 진동했다.

죽은 물고기들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공원을 찾은 시민 일부는 코를 움켜쥐고 '녹차라떼'와 같은 한강물을 신기한 듯 구경했다.

김재영(31.남.직장인)씨는 "TV 속에서 녹조가 심각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물 속에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슬기(26.여대생)씨는 "물이 아니라 녹색 석유를 뿌려놓은 것 같다"며 "오늘 처음 봤는데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라며 "한강물이 수중보에 갇혀 있어 녹조가 심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녹색연합 황인철 평화생태팀장은 "녹조는 해가 쨍쨍 비칠 때는 물 위로 올라왔다가 오후 늦게면 물속으로 가라앉는데 오후 6시까지 이 정도 알갱이가 보이는 것은 녹조 농도가 그만큼 높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팀장은 또 "지금 한강에서 발견되는 녹조는 남조류의 일종인데 마이크로시스틴이나 아나톡신 등 사람의 간이나 신경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독성물질을 가지고 있다"며 "해외 사례를 보면 심할 경우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까지 한다"고 지적했다.

◇ 결국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까지 검출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한강 하류구간에 조류경보를 내린 데 이어 이달 3일에는 조류경보 구간을 양화대교에서 동작대교까지 확대했다. 또 한남대교과 성수대교 등을 포함하는 상류지역에도 조류주의보를 발령했다.

녹조로 몸살을 앓는 한강에 대해 긴급 수질조사를 한 서울시는 마포대교와 한강대교 지점에서 클로로필-a가 46.7∼52.1mg/㎥, 남조류세포수는 1㎖당 5972∼1만 163개 검출됐다고 밝혔다. 통상 조류경보는 남조류세포수가 1㎖당 5000개 이상, 클로로필-a가 1㎖당 25㎎을 초과하면 발령된다.

문제는 환경단체가 경고한 대로 인체에 유입되면 신경과 간에 악영향을 미치는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는 것. 마포대교 하류에서는 독성물질의 일종인 마이크로시스틴-LR이 1㎖당 0.6∼2.0ug 검출됐다. 신행주대교 근처에서는 1.4ug로 측정됐다. 마이크로시스틴 허용 기준은 1㎖당 1㎍ 이하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마이크로시스틴 독성 농도는 기준을 약간 넘은 수준으로 아직 미미하다고 생각된다"며 "조류독소는 정수처리를 거치며 완전히 제거되기 때문에 먹는 물의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학진 서울시 물순환기획관은 "가뭄으로 팔당댐 방류량이 예년의 6분의 1수준으로 크게 감소하면서 한강의 흐름이 정체돼 녹조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분간 큰 비 소식이 없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녹조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고석 단국대 교수는 CBS취재진과 만나 "통상 한강의 경우 녹조는 팔당댐 등 상류쪽에서 소규모로 발생했지만 올해처럼 한강 하류부터 대대적으로 발생한 것은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독 교수 역시 "결국 올해 발생한 녹조가 언제 없어질지는 결국 비가 언제 얼만큼 내리느냐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올해 한강 하류부터 이례적으로 확산되는 녹조는 당장 많은 비와 한강으로 유입되는 오염원 차단 등이 이뤄져야 해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강우량과 수온 등은 자연현상이지만 수중보와 한강 주변 인공공원, 그리고 제대로 정화되지 않은 생활하수 유입 등은 사전에 충분히 고려돼야 했거나 앞으로 개선이 가능한 것들이어서 인위적인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녹색연합 황인철 팀장은 "결국 한강의 자연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가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팀장은 "인공시설물인 수중보와 공원 주변 콘크리트 등은 한강 오염과 녹조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모래톱이나 습지는 자연적인 정화기능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신행주대교 어민 심화식씨는 "도심 속에 한강 어부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곧 한강 생태계가 살아 숨쉰다는 환경지표"라며 "녹조는 물론 오염원을 계속 제거하는 게 우리 모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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