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5일 CBS 라디오 FM 98.1 (토 16:00~18:00)
■ 진행 : 윤지나 기자
■ 대담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자신이 출연하는 인기 TV프로그램인 '수요미식회'에 대해 타인이 음식 먹는 것을 훔쳐본다는 점에서 '푸드 포르노'의 한 종류라고 얘기한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비이성적으로 극대화되면서 곳곳에서 푸드 포르노가 성행하고 있지만, 그나마 세련되게 포장됐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라고 했다. 최근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도 푸드 포르노 범람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황교익 씨는 단순히 음식의 '맛'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문화와 인식의 저변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정부와 자본이 개인의 음식 기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설명함으로써 맛 비평의 지평을 넓히는 식이다. 예를 들어 전 국민의 간식인 치킨의 경우, 정부와 자본의 입김으로부터 치킨이 벗어났을 때도 여전히 '맛있는 음식'일까?
▶ 요즘 여기저기서 얼굴이 많이 보인다. 음식에 관한 쟁점도 쏟아내는데 일찌감치 했던 얘기가 요즘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런 것 같나?
= 음식에 대한 관심이 비정상적으로 극상했다. 제가 원래 음식에 대한 얘기, 맛 칼럼 등을 쓰자고 결심한 것이 1990년대 초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만들어 지는게 국민소득 2만달러일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관심이 과잉이다. 지금은 '더 맛있는 음식'에 대한 관념이 만들어질 정도인데 더 넘어가 있다. 흔히 말하는 '푸드포르노'의 경지가 됐다.
▶ 푸드 포르노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의 특징이 무엇인가.
= 다른 사람이 음식을 멋는 것은 빤히 쳐다보지 않는 게 인간끼리의 예의다. 밥 먹는 행위 자체가 성 행위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원래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쾌락이 성적으로 느끼는 쾌락과 비슷하다. 음식을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민망한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TV를 통해서는 이 '빤히 쳐다보는 것'이 가능하다. 음식 먹는 사람을 TV를 통해 보는 것으로 쾌락을 느끼는 게 푸드 포르노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 쾌락은 음악이나 그림 등 예술작품을 즐기는 것으로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포르노라고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보는 것이 포르노라면, 이때 쾌락이 좀 더 떨어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겠지?
= 음악을 들으면 좋은 것과 다른 사람이 음식먹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에 별 차이가 없다, 라고 하면 쿡방 같은 것도 포르노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인간은 남이 먹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지 않는다. 쾌락을 자기 몸과 감각으로 느껴야 하는데 TV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게 이상한 것이다.
▶ 그러면 요즘 출연하시는 TV프로그램 중에 '수요미식회'가 인기가 많던데, 이건 푸드 포르노가 아니라서 나가시는 건가
= 고도의 포르노라고 할 수 있다. (웃음)
▶ 세련되게 포장한 포르노?
= 원래 먹방은 먹는 사람의 표정 등이 곧 나의 쾌감인 것처럼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수요미식회의 경우 출연자가 맛에 대한 묘사를 통해 시청자들이 자기 머릿 속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도록 한다.
= 시청자의 폭은 워낙 넓으니까 자기 기호에 맞는 프로를 선택하는 것이다. 다양한 포르노 종류 중에 하나를.
▶ 맛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갖고 계신데, 단순히 맛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게 맛있는줄 알았는데 맛없고 맛없는 줄 알았는데 맛있고 이런 얘기가 아니라 어떤 음식을 토대로 한 문화나 인식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으시더라.
= 산업사회에서는 음식에 대한 얘기를 대중에게 던지는 역할을 정부가 했다. 국가는 국민들한테 안정적으로 음식을 공급하고, 충분하게 공급할 수 있는 것을 '맛있다'고 생각하게끔 국민 교육을 해야 했다. 쌀을 예로 들어보자면, 지금은 쌀이 남아도니까 많이 먹으라고 홍보하지만 지난 60년대부터 한 40년 동안은 쌀 많이 먹으면 각기병이 걸리는 혼분식을 하라고 했었다. 심지어 밀가루를 먹으라고 식품학자 동원해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지금처럼 무역장벽이 무너진 세계화 시대에는 국가가 어떤 음식을 국민에게 먹이는게 좋은지를 계속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무엇을 수입하고 무엇을 수입하지 말 것인가, 국민에게 외국산 무엇을 사라고 할 것인가 등. 그런 메시지들이 국민의 기호와 맞아 떨어져야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광우병 사태처럼 정권을 위협하는 일까지 생긴다.
음식에 대한 얘기를 하는 또다른 축은 자본이다. 열심히 음식을 팔아 돈을 벌어야 되니까. 노동자는 품을 팔아 그 돈으로 음식을 사는데, 여기서 식품산업 생기고 자본이 움직인다. 노동자들에게 가정 적절히 던질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본이 선택권이 있다. 음식 소비자들은 "나는 현명한 음식소비자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했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정부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 나의 의사와는 다르게 정부와 자본의 메시지에 설득당한 게 뭐가 있을까?
= 국가와 자본이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형태 중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치킨이다. 소,돼지,닭 중에서 가장 사료비가 덜 들고 지대가 덜 필요한 게 닭이다. 한마디로 '값싸게 고기를 씹을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게 닭이다. 그 것도 그냥 닭이 아니라 작은 닭이 그렇다. 맛이 들 정도까지 키우면 마리당 2.7Kg 정도는 되야 하는데 우리는 30일 정도 된 닭을 1.5kg 일때 잡는다. 밀실사육을 하니까 닭 한마리당 a4 용지만한 곳에서 키우는데, 조금 더 키워서 큰닭을 만들 수가 없다. 그 전에 닭을 빼내서 값싸게 공급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맛 없는 닭인데, 신발도 튀기면 맛있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일단 튀기고 거기에 달고 맵고 한 양념까지 버무려 제공해서 맛있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소비자들이 알고 "닭이 맛 있어질 때까지 오래 키워줘" 또는 "닭 대신 소나 돼지를 먹을래" 히면 국가와 자본이 곤란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식을 정하고 그 음식이 '맛있다'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작업을 한다. 자본도 ‘세계화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치킨은 맛있다’라고 도와준다. 치킨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가 국가권력이나 자본에 의해 보수화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 치킨을 좋아하는 것이 전적으로 나의 취향에 근거한 게 아니다, 라는 말이군. 또 소고기 등급을 마블링을 가지고 매기는 것에서도 강한 비판을 했던데. 마블링 등급은 관련 국가기관이 정하는 것이다.
= 일단 '맛있다 또는 맛없다'를 왜 국가가 정하나? 마블링이 없는 고기를 더 맛있어 할 수도 있는데. 나의 경우가 그렇다. 품목을 다르게 해서 라면을 갖고 생각해보면, 특정 매운맛라면은 1등급이고 닭고기맛 나는 라면은 2등급으로 정하고 가격을 차별화해서 판다고 하면 말이 안된다. 그리고 소는 풀을 먹는 짐승이다. 고기에 마블링이 생기도록 소를 키우려면 풀 대신 곡물을 먹여야 한다. 축산과학원은 소가 어떻게 하면 곡물을 잘 소화시키고 위장병에 걸리지 않을까를 연구하는 상황이다.
▶ 소비자 입장에선 지금 말씀들 설득력있는 측면이 많은데, 왜 이런 얘기들은 잘 들리지 않을까?
=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 나 말고도 많이 있긴 하다. 문제는 언론이 정부기관이나 자본에 의해 조종되는 사람들의 말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천일염이 대표적 사례다. 천일염 자체가 깨끗할 수 없다. 서해는 전세계 바다중에 오염도가 심하고 생산환경도 먼지와 세균 등 나쁜 환경에 노출돼 있다. 갯벌의 흙 같은 게 소금에 섞이는데 정부는 이런 흙이 소금에 들어가도 식용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천일염을 안전하게 먹자고 한다면, 적어도 세균검사 정도는 해줘야 하는데 정부가 안전하다고 하니까 언론도 그렇다고 하고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