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평해전은 '서해전쟁'(메디치미디어)이라는 책을 쓴 제 관심 주제와도 다르지 않아요.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는 눈물과 탄식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후 맥락과 사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제2연평해전을 다룬 이 영화는 역사적 진실을 전달하기보다는, 죽음에서 유발되는 감성적인 효과에 치우쳐 있다는 데 여러 의심이 들더군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볼 생각입니다."
지난 3일 서울 서소문에 있는 디펜스21플러스 사무실에서 만난 김 편집장은 최근 북측이 연평해전 상영 등과 관련해 "도발하면 초토화시키겠다"는 발언을 한 것을 두고 "서해가, 그 중에서도 NLL(북방한계선)이 남북 정치의 급소가 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서해는 남측에게도, 북측에게도 자존심을 걸고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국가 의지의 시험대가 된 셈"이라는 것이다.
▶ 서해는 남과 북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곳인가.
= 굉장히 복잡하고 곤란한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공간이다. 사실 한국전쟁 때 유일하게 교전이 없던 곳이 서해 북방선이다. 한반도 전역이 전쟁터였을 당시 서해 연평도, 백령도 현지 주민들이 전쟁을 체험한 것은 내륙에서 온 피란민들을 통해서였다. 1990년대 후반을 끝으로 휴전선에서조차 남북간 교전이 사라진 지금, 평화롭던 서해가 유일한 분쟁지역이 된 것이다. 거대한 반전이다.
그만큼 남북의 정치·군사적 구조가 급변했다. 계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1999년의 제1연평해전이었다. 위기가 평화적이지 않고 폭력적으로 마무리 됐으니, 그 이후 쌓인 증오와 원한이 국가의지가 된 것이다. 1990년대까지 NLL의 존재는 군인 중에서도 해군 담당자 아니면 몰랐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모든 국민이 알게 됐다. 한국판 9·11이라 할 수 있는 제1연평해전의 무력 충돌이 서북해역의 정세를 바꾼 것이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와 평양의 거리는 약 60㎞에 불과하다. 백령도와 인천의 거리가 230㎞니 무척 가까운 셈이다. 서해가 분쟁지역화 되면서 이러한 지리적 요인까지 더해져 한국의 안보 부담이 급속도로 증대된 것이다.
= 더욱 악화될 것이다. 서해 쪽으로 남북의 핵심 무기들이 결집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그렇다. 지난 몇 년간 서해 교전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남북간 괄목할 만한 군비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만약 다음번에 교전이 일어난다면 그 양상이 매우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에는 해상에서 함전과 함전이 교전하면 육상과 항공 전력은 개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북측이 해상교전시 육상의 포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황해도 해주에 사령부를 둔 4군단은 보유 화력을 현장에서 즉시 동원해 싸울 수 있는 자율지휘체제를 갖게 됐다. 남포에 있는 서해사령부의 전력 역시 신형 함정과 잠수함 등을 도입하는 등 대폭 강화됐다.
우리 역시 앞으로는 서해 5도 지역에서 교전이 일어나면 지·해·공 합동 전력을 모두 동원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2011년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가 창설됐다. 현장에서 북측 4군단과 대칭적인 곳이 서방사다. 남북 모두 서해 교전이 일어날 경우 육·해·공군을 다 동원해 현장에서 빠르게 대응하게 된 것이다.
▶ 결국 남북간 합의에 따른 분쟁의 최소화가 관건일 텐데, 어려움이 많나.
= 별로 어렵지 않다. 노무현 정부 5년간에는 교전이 없었다. 2005년 남북 해군 사이에 직통전화가 설치돼 오인을 막았고, 남북해운합의서가 채택돼 적대적인 북측 함정만 아니면 공해상으로 나가는 것도 허용했다. 건설적인 정책 덕에 서해 걱정은 안하고 살았던 때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영해를 포기한 것처럼 얘기되고 군의 희생만 강조하는 편향된 쪽으로 흐르다보니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다.
해주와 남포는 장차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 수 있는 전략적 관문이다. 하지만 지금 숨통이 막혀 있다. 통항을 해야 한다. 평양으로 가는 이 관문을 열지 않고는 무엇도 이뤄질 수 없다.
우리 필요에 의해 남포에 자동차 공장을 짓고, 개성공단을 조성했다. 특히 자유로운 통항 분위기를 바탕으로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를 설치해, 군은 빠지고 경찰이 관리하자는 쪽으로 정책이 진화하고 있었다. 북한도 외화벌이가 짭짤한 서해 공동어로구역에 관심이 많았기에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지금 서해는 중국이 독식하는 '죽은 바다'가 됐다. 남북 모두에게 명확한 국가적 이익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색된 남북 관계 탓에 군의 피로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모습이다.
= 군인이 전쟁광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적이 내려오는 걸 봤을 때 다시 올라가기를 기도하는 게 군인들이다. 현장 상황을 통제하기조차 어려운 전쟁을 '사냥'쯤으로 여기는 정치인들이 많다. 안보 이슈가 정치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우리가 강하게 나가면 북한은 굴복할 것이고, 그게 바로 평화"라는 식으로 말한다.
"왜 북한에 양보하냐"는 것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안이한 대북 인식이었다. 이는 결국 전투원들의 피로 돌아왔다. 천암함과 연평도 사건이 그랬다. 위험한 기동을 하게 만들어 전선에서 군의 등을 떠민 게 희생을 키웠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적을 응징하고, 적에게 굴욕감을 안기는 걸 강조하는 정치 논리였다.
이러한 정치적 입김이 군에 작용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이러한 흐름이 이어졌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군대의 본질을 모르니 싸우면 질 수밖에 없었다. 군의 등을 떠민 정치가 피해를 키우고 나쁜 결과를 초래하면서 안보의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 현재 미국은 우리에게 세 가지 면에서 짐이 되고 있다. 먼저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한국이 앞장서라'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 갈등을 빚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한국의 발언을 요구하고, 사드를 배치하려는 것은 한·중 관계를 미국이 조정하겠다는 의도다.
그 다음이 '일본과 협력하라'는 것이다. 미국이 "과거사는 덮고 가자"는 식으로 일본의 손을 들어 주고 있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가해자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점에서 두 번째 짐이다.
마지막 짐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최근 IS(이슬람 국가) 탓에 중동 정세가 악화되면서 한국에 지상군 파병을 요청할 조짐이 있다는 것이다. 제가 볼 때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남한이 북한을 위협과 공포의 대상으로만 인식할 경우, 미국이 얹어 준 짐들은 우리 의지로 관리하기가 몹시 어렵게 된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가 버티고는 있지만, 국민들에게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통치력을 강화하려는 순간, 이 세 가지 짐은 곧바로 현실이 된다. 새로운 시련이 닥치게 되는 것이다.
▶ 남북 관계 경색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는 어떻게 변했나.
= 국제 무대에서 우리의 위상은 추락하고 있다. 지금처럼 한국과 국제사회가 합세해 북한을 고립시키고 압박하는 형국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한국이 6자 회담을 이끌고 남북정상회담을 주도할 때는 국제사회가 우리의 입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북 질서가 분쟁으로 흐르다보니 이제는 한국이 일본의 뒤를 쫓아가고 있다. 주변국이 다들 한국에 은혜를 베푸는 꼴이 된 것이다. "그저 현상 유지나 하자"는 식의 안보 논리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주도하지 않으며 안 된다.
▶ 최상의 안보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가.
= 산에서 위험한 독사를 만났다고 치자. 독을 잔뜩 품은 독사 앞에서 손을 흔들어야 할까? 그러다가 물렸을 때 "산에 독사를 살게 했다"며 환경보호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안보는 군사적인 전문성에 바탕을 둬야 한다. 정치화는 위험하다. 우리는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전문가도 있는데, 원인과 실패 요인을 규명하는 대신 통치를 강화하려는 정치 이슈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승리가 불확실한 전투를 피하면서 지지 않는 전투를 한 '이순신의 안보'와 거리가 멀다.
최상의 안보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위협이 내포한 실체를 관리·통제하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축적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보는 결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실패하면 워낙에 치명적이기에 승패 논리로 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뭘 "양보했다" "굴욕적이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안보는 두 차례의 해전에서 승리하고 이후 5년간 평화를 유지했으니 성공한 것이다. 반면 물리적 피해와 사회적 파장이 컸던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실패한 안보다.
결과로서 안보를 얘기하는 것은 군사 문제를 바라보는 전문가로서의 양심이다. 그런데 지금은 안보에 실패한 자가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더욱 악을 쓰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양심과 지성이 살아 있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
=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강화되면 매우 나쁜 역사가 만들어진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으로 주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잠재력이 없어지고, 현상 유지에만 매몰되는 탓이다. 북측의 위협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관리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제거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선에 사신을 보낸 적이 있다. "조선을 침략한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대신 제거해 줬으니 우리가 은혜를 베풀었다. 청나라와 싸우는데도 파병해 주겠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누루하치가 조선을 싹 쓸어 버린 다음에 "조선을 국가로 인정해 주고 왕까지 살려 줬으니 조선은 우리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했다.
저물어가던 명나라 역시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파병했으니 은혜를 베풀었다"고 말했다.
소위 '재조지은(거의 망하게 된 것을 구원해 도와준 은혜)'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펴는 것인데, 지금 상황과 몹시 닮아 있다.
우리가 북한의 위협을 심각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식하게 되면 미국과 중국, 일본의 재조지은 논리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실재로 이들 나라는 모두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나.
북한을 품지 않으면 우리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정부와 국민의 노력은 물론, 남북의 발전적인 관계를 망치려는 언론도 선동을 멈춰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서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