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현수막' 아르바이트가 '집회·시위'라고?

아파트 분양 업체, 경찰에 집회 신고한 뒤 구청 단속반에 '허가 받은 집회' 주장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인간 현수막'아르바이트가 크게 증가하는 가운데 홍보 활동을 위해 관련 업체가 허위로 '집회 신고'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끊임없이 진화하는 업계의 행태에 관계 기관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부산지역에 불어닥친 부동산 광풍으로 아파트 분양 관련 현수막 등 불법 홍보물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고, 구청은 관련 규정에 따라 불법 옥외 광고물에 대한 단속에 나서 과태료 처분을 내리고 있다.

계속되는 과태료 폭탄과 단속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분양 업체들은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현수막을 직접 부착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이를 들고 있다가 단속이 나오면 즉각 철수시키는 이른바 '인간 현수막'을 이용해 과태료 처분을 피하고 있는 것.

구청은 이 같은 인간 현수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할만한 법적 근거가 없어 즉각 처분을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인력을 투입해 해당 홍보 활동을 제재하거나 심할 경우 현수막을 압수하는 방법으로 맞서고 있다.

이 같은 관계 기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법의 허점을 노린 분양 업체들의 행태가 또 한 번 진화했다.

일부 아파트 분양 업체가 현행 집회및시위에 관한 법률을 악용해 마치 자신의 홍보 활동이 집회나 시위인 척 경찰에 신고한 뒤, '합법적인 활동'이라며 버티기에 들어간 것.

집회나 시위가 열릴 때 동원되는 현수막이나 피켓은 단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또 다른 꼼수였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옥외 집회나 시위를 할 경우 관할 경찰서 또는 지방경찰청에 그 목적이나 일시, 장소 등을 신고하게 돼 있다.

실제로 불법 광고물 단속에 나섰다가 이 같은 주장을 들은 담당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 사상구의 옥외 광고물 단속 담당인 A씨는 지난 3월 사상구 주례 교차로 일대를 단속하다가 '인간 현수막' 홍보 현장을 포착했다.

A씨는 곧바로 홍보 활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엄중히 경고했지만, 홍보 인력 두 명은 자리를 지킨 채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남성들이 내민 종이는 다름 아닌 경찰서장 명의의 '집회 신고증'.

합법적인 집회라는 이들의 주장에 A씨는 주의 조치만 내렸을 뿐 물리적 단속을 할 수가 없었다.

A씨는 "당시 홍보 인력들은 일선 경찰서장이 발급한 집회 신고증을 근거로 합법적인 홍보 활동임을 주장했다"라며 "불법 여부를 즉각 판단할 수 없어 물리적인 제재를 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홍보 업체의 이 같은 꼼수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경찰에 신고한 집회 지역이 아닌 다른 행정 구역까지 찾아가 불법 홍보활동을 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A씨는 "1년 전인 작년 3월쯤 사상구 엄궁동의 한 교차로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라며 "당시 집회 신고증은 사상구가 아닌 다른 지자체를 관할하는 경찰서에서 발급받은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해당 활동이 집회 신고 대상인지에 대한 법리적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의 관계자는 "'집회 결사의 자유'에 따라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가 아니라면, 경찰이 집회 신고를 받지 않을 수는 없다"라며 "해당 홍보활동이 집회 신고의 대상인지는 구청 등 관계기관과 다각적인 법률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한 달 평균 10~15건의 집회 신고가 들어오는 데다, 최대 30일까지 집회 신고를 해놓을 수 있다"라며 "이 때문에 모든 집회 장소를 매일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신고 내용과 다른 곳에 집회 신고서를 악용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얌체' 홍보 활동이 점차 진화하면서 구청과 경찰 등 관계기관이 골머리를 앓고 있어 관련 규정이나 단속 활동의 재정비가 필요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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