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으로 증거가 조작돼 각종 공안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피해자들이 재심을 받을 때면 인권의학연구소 임채도 사무국장은 꼭 법정을 찾는다.
대다수 고문 피해자들은 친척은 물론 가족과도 헤어진 지 오래다. 수십 년 동안 '간첩'이라는 멍에에 갇히기도 하면서 정신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홀로 남게 된 것.
이들이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재심을 받는 법정에서조차 혼자 서있기 일쑤다.
그런데 이 과정에,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법정 분위기에 압도돼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수십년 전 사법살인을 당했던 그때와 다르지 않다.
임 사무국장이 2013년부터 본격적인 '재심동행' 활동을 시작한 이유다.
그는 "피해자들은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살아왔다"며 "재심 판사가 '왜 당시엔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건 고통으로 가득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는 재심이 시작되기 전 고문 피해자를 만나 '진실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법정'이라고 강조하며 용기를 불어넣는다.
"이 작은 변화가 삶에 대한 의지와 목표를 만들어 내,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가 됩니다. 그동안 회피하기에 급급했던 과거의 상흔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거죠."
인권의학연구소가 2011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고문 피해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성폭행 피해자의 트라우마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통상적으로 성폭행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겪는 비율은 60%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 고문 피해자의 경우 75%에 달했다.
고문은 자신의 생각마저 고문 가해자에 의해 수십일 동안 지배되는데, 심지어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 사이 최소한의 자존심과 인간성은 처절하게 파괴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고문이 빈번했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트라우마는 평생 반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 역시 고문 피해자이기도 한 임 사무국장은 "팔에 도청 장치가 심어져 있는 것 같아서 한 달 동안 팔만 쳐다보며 '칼로 찢어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면서 "대부분은 불안과 우울, 자책감 등 전형적인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고문 피해자들이 재심동행 지원을 통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앞으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재심동행 활동을 지원받으신 분들은 재판 이후에 일생생활과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봉사활동이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기까지 하거든요. 재심동행이 필요하신 분도, 함께 참여하고 싶으신 분도 인권의학연구소(02-711-7588)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