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은이 “벌써 40년…세월이 더디게 흘러갔으면”

[노컷 인터뷰] 데뷔 40주년, 가수 혜은이

지난 1975년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데뷔, 10대 가수상, 가수왕, 최고 인기가수상 등 3사 통합 가수왕을 수상했다. 곡을 내놓을 때마다 1위를 휩쓸었고,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다. 가수 혜은이(본명 김승주, 59)에 대한 이야기다.


혜은이가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열정은 전성기 시절만큼이나 뜨겁다. 7월 공연을 앞둔 뮤지컬 ‘사랑해 톤즈’ 연습에 한창이고, 40주년 기념 앨범 작업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지난달 말 선공개 형식으로 신곡 ‘눈물샘’과 ‘외로움이 온다’가 담긴 싱글 ‘프리 리스닝(Pre-Listening)’도 발매했다.

최근 서울 반포동의 한 카페에서 혜은이와 마주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지난 40년에 대한 이야기와 향후 활동 계획 등을 들어봤다.

우선 데뷔 40주년을 맞은 소감부터 물었다. 혜은이는 그동안 독집 24장, 기념 앨범까지 50여 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1975년도 데뷔니까 만으로 40년, 햇수로는 41년이 됐어요. 한 가지 일을 오래 한 거죠. 보통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해주잖아요. 여러 고비가 많았음에도 꿋꿋하게 오래 버텨왔다는 것에 만족스러워요.”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비결을 묻자 ‘당신은 모르실거야’, ‘뛰뛰빵빵’, ‘감수광’, ‘제3한강교’ 등의 곡을 쓴 고(故) 길옥균에게 공을 돌렸다.

“곡이 좋았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겠죠. 길오균 선생님 곡이 정말 대단한 곡이에요. 음악적으로는 정말 천재셨죠. 지금 활동하는 뮤지션들도 선생님이 곡을 편곡해보면 놀라요. 어떻게 그 시절에 이런 음악을 했냐면서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요.”

‘스타 가수’로 불리는 혜은이지만, 아쉬움도 있다. 남편인 탤런트 김동현의 사업 실패, 어머니의 별세 등으로 1990년대 들어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혜은이는 “데뷔는 40년이 됐지만, 20년치 앨범을 못 냈다”며 “아쉬운 순간이 정말 많다”고 털어놨다.

“멋지게 활동할 수 있는 20년을 도둑맞아서 정말 아쉽죠. 제가 40년 동안 계속 활동했다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20년 치 앨범을 못 냈어요. 히트곡은 초반 10년간 쏟아져 나온 것이죠. ‘40년을 했으니까 히트곡이 그렇게 많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아니거든요. 힘든 시간을 보낸 뒤 다시 활동을 하려고 하니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네요. 하하.”

그렇지만 혜은이는 자신을 “운이 좋은 가수”라고 평했다. 방송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할 당시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곳을 뛰어다녀야지만, 자신의 곡을 다시 불러준 후배 가수들 덕분에 잊히지 않을 수 있었다고.

“공백기엔 방송을 할 수도 없었고, 돈 되는 일만 하러 다녀야 했죠. 그런데 운이 좋게 조관우와 핑클이 ‘당신을 모르실거야’를 리메이크 해 다시 히트시켰죠. 또 코요테가 ‘열정’을 히트시켰고요. 그때마다 ‘혜은이’라는 이름이 다시 기억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변치 않는 팬들의 존재도 큰 힘이다. 가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도 가수왕 수상 때가 아닌 뒤늦게 자신의 팬카페를 발견했을 때란다.

“2002년도 쯤 인터넷에 제 팬카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놀랐고 솔직히 정말 좋고 뿌듯했어요. 예전에 활동할 땐 팬클럽 같은게 없었으니까요. 덕분에 마음으로만 저를 좋아하셨던 분들이 결집될 수 있었고, 규모가 커졌어요. 이젠 서로 나이가 있어서인지 팬들과 가족처럼 지내요. 밑반찬부터 목에 좋은 도라지 꿀, 그릇, 식혜를 택배로 보내주기도 하죠. 어린 아이들처럼 제 스케줄에 맞춰서 뭔가를 하는 걸보면 참 신기해요.”

최근 준비 중인 40주년 기념 앨범도 팬들이 먼저 발 벗고 움직였다. 작곡가를 직접 섭외하고, 녹음까지 지원했다. 또 세션을 담당하는 대다수의 뮤지션들도 뜻 깊은 앨범이라는 생각에 무보수로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혜은이는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 받는 가수가 된 비결을 묻자 “미녀 가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며 웃어 보였다.

“매번 하는 이야기지만 ‘미녀 혜은이’라고 불렸다면, 이렇게 오래 가지 못했을 거예요. 그냥 귀엽다는 이미지 하나로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죠. 저한테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건 어린 사람이건 ‘예쁘다’ ‘미인이다’라고 하지 않고 ‘귀엽다’고 하거든요. 60세가 넘었는데도 나더러 귀엽다고 말하니 참 웃기죠.”

노래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이번 앨범 작업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예전보다 편안하게 노래하려 노력했고 자신의 의견이 아닌 작곡가, 편곡가의 의견을 받아 들였다. 또 평상시 보다 키도 많이 낮춰 불렀다. 자기만족이 아닌 대중이 원하는 곡을 만들이 위해서다. 덕분에 가장 혜은이 다운 발라드 곡이 나올 수 있었단다. 향후 발매된 40주년 기념 앨범이 기대되는 이유다.

활동 의지는 강하지만,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가수들이 노래할 만한 음악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혜은이도 이를 인지하고 있고, 아쉽기도 하단다. 또 “가요계가 너무 삭막해지고, 바쁘게 돌아가는 탓에 한 가수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구조”라며 안타까워했다.

“제가 노래를 부를 수 있을만한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어요. 음악 방송은 젊은 친구들 위주고, 특히 제 노래가 대부분 팝 장르라 성인가요 무대에 오르기도 애매하죠. 결국 콘서트로 승부를 봐야죠. 큰돈을 벌기위해서가 아니라 제 무대를 팬들에게 보여주고 저 역시 즐기기 위해서요.”

그런 혜은이에게 뮤지컬 무대는 팬들과 호흡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다. 그는 7월 16일 막이 오르는 ‘사랑해 톤즈’에서 고(故) 이태석 신부를 도운 막달레나 수녀 역을 맡았다. 혜은이는 “뮤지컬은 데뷔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꿈이었다”고 말했다. 또 “아쉽게도 이젠 신데렐라가 아닌 계모를 해야 할 나이”라고 웃으며 “향후 코믹한 연기, 악녀 역할도 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혜은이는 향후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던 20년이라는 공백 기간을 최대한 채워나갈 생각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조급한 마음이 든다”면서도 “다행히 성대가 가장 빨리 늙는다더라”며 미소 지었다.

“욕심 같으면 한없이 하고 싶죠. 하지만 한계라는 게 있잖아요. 아직은 자신 있으니까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내 스스로 한계를 느꼈을 때는 그만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노래가 안 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거든요. 다행스럽게도 성대가 가장 늦게 늙는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10년 정도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릴 때나 어려움을 겪었을 때는 시간이 빨리 갔으면 했는데, 되돌아보니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어요. 세월이 좀 더디게 갔으면 좋을텐데. (웃음)”

가수로서의 최종 목표는 대중에게 “열심히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예쁜 가수, 노래잘하는 가수라는 수식어가 아니라 ‘늘 열심히 했던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고, 자기 일을 정말 충실하게 잘했던 가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앞으로 활동 더 많이 하고 공연도 많이 할 계획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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