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감독은 "사실 내가 맡아야 하는데 김 감독님께 미안하다"고 운을 뗐다. 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우승팀 사령탑이 맡는 게 관례였다. 류 감독은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WBC에서는 쓴맛을 봤지만 아시안게임은 금메달을 이끌었다.
하지만 올해는 리그 일정상 대표팀을 맡기가 어려웠다. 류 감독은 "올해 경기수도 늘어났는데 한국시리즈(KS)까지 마치면 11월 5일쯤 될 것 같더라"면서 "프리미어12 대회가 11월 8일인데 대표팀 감독이라는 사람이 대회 이틀 전 팀을 소집하고 훈련하는 게 그렇더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류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고사한 이유였다. 류 감독은 "지난해도 아시안게임이 있어 11월 11일에야 KS가 끝났다"면서 "대표팀을 맡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마음이 가벼울 수는 없다. 류 감독은 "김 감독님이 나이도 있으시고 몸도 불편하신데 정말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어 "선수 차출을 요청하시면 여건이 닿는 한 무조건 보내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류 감독이 대표팀을 고사한 데는 삼성이 KS에 오른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지난 2011년부터 통합 4연패를 이룬 삼성은 올해도 KS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29일까지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류 감독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대표팀을 맡을 수 없는 이유는 삼성이 무조건 KS에 진출할 것으로 생각하신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취재진의 질문이 나온 것이었다. 대부분 삼성의 KS 진출을 예상하지만 아직까지 확실치는 않은 미래의 일이었다.
잠시 웃으며 생각하던 류 감독은 "KS에 오르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감독들의 목표가 아닌가"라며 위기를 모면했다. 사실 삼성이 무조건 KS에 진출한다는 얘기를 스스로 하는 것은 다소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대를 삼성의 시대로 만들겠다는 류 감독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