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타임도 관리한다? KBL도 오죽 했으면…

KBL은 28일 승부조작 및 불법도박과 관련된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사진 제공/KBL)
"작전타임을 불러야 할 때 불렀는가, 지시를 해야 할 때 필요한 지시를 했는가, 이제 우리가 따져보겠다"

프로농구를 주관하는 KBL의 김영기 총재가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승부조작과 불법도박의 마수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았다. 연맹과 구단이 입장을 바꿔 앞으로는 KBL이 구단과 감독, 선수에게 설명회를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설명회 요구의 대상이 되는 경기는 KBL 규약 제17조 '최강의 선수 기용'을 근거로 결정된다. '구단은 공식 경기에 임할 때 최강의 선수를 기용하여 최선의 경기를 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승부조작는 곧 고의패배다. 경기에서 지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선에서 선수 기용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다. 강동희 감독은 이같은 방식으로 승부조작을 했다는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창진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은 부산 케이티 감독 시절 승부조작 및 불법도박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에 KBL은 규약 제17조의 적용을 강화해 승부조작의 마수가 뻗칠 가능성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KBL의 입장

김영기 총재는 '가비지 타임(garbage time)'을 없애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비지 타임'이란 승패가 일찌감치 결정돼 주전 선수가 빠지고 벤치 멤버가 투입돼 경기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뜻한다.

김영기 총재는 "앞으로는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프로농구는 하나의 비즈니스다. 가장 큰 문제는 불성실이다. 팬은 누구를 보러 오느냐, 최강의 선수를 기용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문제가 된다. 우리는 그동안 소흘하게 해왔다. 엄격히 규제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감독의 경기 운영에도 시선을 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영기 총재는 "상대가 치고 나가는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거나 작전타임을 불러도 특별히 지시를 하지 않는 등 그런 일은 농구 선진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내부의 기능이 없기 때문에 KBL 차원에서 들여다봐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럼 팬들이 보는 시각에서는 의혹이 상당히 해소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만약 특정 구단이 최강의 선수를 기용하는 상황이 길어지거나 최선의 경기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KBL이 해당 구단에 설명회를 요구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충분히 소명이 될 경우에는 문제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2014년 11월4일 울산 모비스 vs 안양 KGC인삼공사

예를 들어보자.

작년 11월4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울산 모비스와 안양 KGC인삼공사가 붙었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KGC인삼공사는 한때 점수차를 16점으로 벌렸고 3쿼터까지 60-51로 앞서갔다.

그런데 KGC인삼공사는 결국 69-73으로 역전패 했다. 모비스가 추격을 개시한 4쿼터 초반 주축 선수인 오세근을 벤치에 앉혀둔 것이 패인으로 작용했다. 경기 후 KGC인삼공사의 경기 운영에 대한 팬들이 비난이 쏟아졌다.


이동남 전 감독대행이 4쿼터 초반 오세근을 기용할 수 없었던 것은 부상에서 막 복귀한 오세근이 체력 저하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통해 이같은 내용이 밝혀지면서 의혹은 해소됐다.

이 경우 KGC인삼공사는 '최강의 선수'를 기용해 '최선의 경기'를 펼쳤다고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KBL 관계자는 "먼저 감독에게 왜 그렇게 선수 기용을 했냐고 물을 것이고 이어 선수에게도 질의를 할 것이다. 그날 같은 경기는 설명회를 통해 충분히 해명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KBL은 설명회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기용으로 승패가 갈린 경기, 더 나아가 혹시라도 승부조작의 의심을 살 수 있는 경기에 대한 의혹을 풀겠다는 것이다.

◇지나친 간섭은 아닌가

그런데 '최강의 선수', '최선의 경기'의 정의가 너무 애매하다.

KBL의 입장은 이렇다. 앞으로 구단은 40분 내내 100% 전력을 다해야 한다. 비디오 분석을 통해 철저히 모니터링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100% 전력을 다하지 않는 구단은 없다. 경기 후 평가는 철저히 결과론이다. 점수차가 커 주축 선수의 체력을 안배했다가 흐름이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막판 승부처를 염두에 두고 작전타임을 아꼈다가 분위기를 넘겨주는 경우도 있다.

밖에서는 모르는 구단 만의 사정도 있다. 예를 들어 실력은 뛰어나지만 규율을 어기고 제 멋대로 행동해 팀 분위기를 크게 헤친 선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감독이 자체 징계 차원에서 해당 선수의 기용 폭을 줄인다면 이는 규약 제17조를 어긴 것인가, 아닌가.

무엇보다 선수 기용은 감독이 갖는 절대적인 권한이다. KBL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다. 해외 프로농구 리그는 물론이고 타종목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현장의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끝 없는 승부조작 의혹, KBL도 오죽 했으면…

최강의 선수 기용은 무엇이고 100% 전력을 다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추상적으로는 알지만 정확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KBL 고위층은 농구인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KBL이 이같은 결단을 내린 것은 그만큼 프로농구를 둘러싼 승부조작과 불법도박의 마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승부조작의 가능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이렇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KBL은 지난 2012-2013시즌 '탱킹(tanking)' 때문에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신인드래프트에서 좋은 신인을 뽑기 위해 일부러 성적을 내지 않는 것을 '탱킹'이라 표현한다.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 등 경희대 3인방을 비롯한 황긍세대를 두고 치열한 물밑(?) 경쟁이 펼쳐졌다. 승부조작과 연관되지 않았을 뿐 고의패배를 의심할만한 경기가 적잖았다.

프로농구 역사에 흠집으로 남을 '탱킹' 시즌과 끝 없는 승부조작 의혹으로 인해 프로농구를 보는 시선은 싸늘해졌다. 신뢰 회복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고 특히 마케팅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KBL의 강수에는 이같은 배경이 있다.

관건은 KBL이 느끼고 있는, 자칫 프로농구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을 10개 구단과 충분히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반발만 남는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또한 규약 제17조를 강화하기로 했다면 매우 구체적인 시행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다만 전창진 감독의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KBL이 경기 운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응 방안을 마련한 것이 다소 성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