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함께 국토 분단이 시작된 불과 7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만주, 중국, 시베리아, 유럽까지 이어지던 옛길이 이제는 너무도 높은 벽에 가리워졌다.
바다와 휴전선에 가로막힌 ‘섬나라’ 신세를 자탄하는 동안, 웅혼했던 대륙적 상상력마저 민족의 DNA에서 사라져갈 운명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박근혜 정권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도 연계해 ‘유라시아친선특급’ 행사를 갖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공모를 통해 선발된 국민 참가자들이 오는 7월 14일 서울을 출발해 장장 19박20일 동안 기차를 타고 러시아와 중국, 몽골을 거쳐 독일 베를린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이들은 중간 기착 도시마다 다양한 행사를 통해 한반도 통일과 유라시아의 소통 및 경제협력, 물류 협력을 홍보할 계획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주파할 1만 4000km의 유라시아 대장정 가운데 정작 남·북한은 빠져있다는 점이다.
유라시아 횡단철도는 우리가 아니더라도 이미 여러 나라에 의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오히려 한반도 종단철도(TKR) 연결이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물론 남북한 철도 연결은 고사하고 시범운행조차도 지금의 남북관계에선 꿈도 꾸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유라시아친선특급 행사가 출발부터 치열함이 결여됐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통일부는 이 행사의 추진단계에서부터 배제됐다.
통일부 직원 2명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부터 하바로프스크까지의 일부 구간에 탑승객으로 참가하는 게 업무 협조의 전부다.
언젠가 한반도 종단철도가 성사되면 대륙철도와 연결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가입을 위한 노력도 미흡했다.
통일부나 통일준비위원회는 이와 관련, 북한 측과 전혀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이 주로 옛 공산권 국가들로 이뤄진 OSJD에서 동분서주했지만 북한의 반대를 넘기엔 한계가 있었다.
OSJD 가입이라도 이뤄졌더라면 유라시아친선특급은 보다 희망찬 꿈을 싣고 달릴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핵심인 한반도 종단열차의 실현 가능성은 사실상 처음부터 포기해버린 순간, 이 행사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게끔 운명 지어졌다.
물론 이렇게라도 희미해져가는 대륙의 꿈, 통일의 꿈을 키워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 행사가 2002년 ‘한·러 친선특급’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은 희망보다 씁쓸함을 남긴다.
당시도 이번과 똑같이 7월14일 서울을 출발해 비행기로 남의 나라 땅까지 이동한 뒤 열차로 갈아탔다.
1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남북관계는 정체되거나 오히려 후퇴한 것이다.
‘통일대박론’이 그렇듯 유라시아친선특급도, 말만 하면 이뤄지는 동화 속 이야기 같아 선뜻 박수를 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