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파동에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고 청년실업과 자영업자의 몰락 등 해결해야 할 민생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국정을 책임지는 청와대와 여당이 집안싸움에 매달리고 있으니 국민만 불쌍하다.
정치가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부여당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니 이야말로 배신의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집안 싸움은 한국 정당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 배신의 정치라는 낙인을 찍자마자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벌떼같이 달려들어 유 원내대표 몰아내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국회법 개정안은 공무원 연금법 통과를 위해 여야가 합의한 법안이고 또 여당의원들을 포함해 국회의원 211명의 찬성으로 통과된 법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력화할 수 있는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를 훌쩍 넘긴 국회의원의 찬성으로 통과된 법안이다.
국회의원은 한사람 한사람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헌법 기관으로 정상적인 국회라고 한다면 당연히 재의에 붙여 결론을 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통과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마자 재의 논의조차 없이 무력화시키기로 했다.
여야 합의의 정치는 산산조각 났고 국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친박 의원들의 유 원내대표 몰아내기는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정당정치와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는 일이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의원 다수에 의해 뽑힌 원내대표를 하루아침에 쫓아내는 것은 민주적 절차와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유 원내대표는 이미 지난 25일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사실상 재신임까지 받았다.
재신임 직후 열린 당내 행사에서는 대통령에게 사과문까지 작성해 읽기도 했다.
소속 의원 160명에 이르는 집권여당의 원내대책을 총책임지는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반성문을 쓰는 것도 정당정치가 뿌리내린 민주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친박계가 그 정도론 안된다며 끝까지 찍어내겠다고 나선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게 해서 원내대표 찍어내기에 성공한다면 앞으로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는 누가 되든 국민보다는 대통령의 눈치보기에 급급한 인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민이 선출한 헌법기관으로서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국민을 위한 입법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유 원내대표 찍어내기는 유신시대라면 모를까 한국 정당사상 치욕적인 일로 꼽힐 만하다.
당청 간에 벌어지는 집안싸움은 집권당의 당내 민주주의의 후퇴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점에서 걱정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