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지난주까지도 그리스 문제가 봉합 수순에 들어갔다는 낙관론에 무게 중심을 둬온 터라 실망감으로 돌변한 투자심리가 증시에 크게 반영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자산 기피 심리가 나타날 수 있다며 단기 조정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와 한국 경제가 직접적으로는 크게 얽혀있지 않은데다가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정책 기대감도 살아있는 만큼 과도한 공포심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외국인 발 빼나…실적 하향·내수 위축도 부담
그리스 우려가 되살아나며 시장은 외국인의 증시 이탈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위험자산 기피 심리가 확산하면서 외국인들이 한국을 포함한 신흥 시장에서 자금을 대거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단기 리스크 지표와 외국인 순매수 규모와의 평균적인 상관관계를 이용해 추산한 결과 그리스 이슈는 국내 증시에서 3천700억~5천600억원 규모의 매도 압력을 촉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책임연구위원도 "과거 남유럽 재정위기 사례에서 봤듯이 유럽계 금융기관이 신흥국 시장 투자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한국 시장에서도 자금을 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도 임박했기 때문에 두 가지 요인이 맞물린다면 외국인의 이탈 속도와 규모는 배가될 수도 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오전 11시 37분 현재 277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기관(-782억원)과 함께 지수에 부담을 주고 있다.
외국인은 최근 3거래일간 대외 불안 완화와 국내 정책 효과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순매수세를 보였으나, 이날 순매도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스 불안과 함께 기업의 2분기 실적 전망치 하향,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영향으로 인한 내수 위축 등도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요섭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이달 위험자산 선호심리와 상승 모멘텀은 제한될 것"이라며 그 이유로 그리스 불확실성 지속과 중국 증시 리스크 확대, 미국 금리 인상 우려, 메르스 여파, 2분기 실적 시즌에 대한 부담 등을 꼽았다.
◇ "그리스 영향 단기적·제한적" 관측도
코스피가 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리스가 세계 경제 및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이번 충격은 단기적이고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도 적지않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유럽 은행들의 그리스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342억달러로 2010년 말 1천284억달러의 26.6%에 불과하다.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계 은행의 한국에 대한 익스포저도 유럽 재정 위기 당시 25억5천만달러에서 지난해 4분기 11억3천만달러까지 줄었다.
박석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악의 경우에도 그리스 정부의 부채가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등 국제기구에 집중돼 있어 민간부문의 부실 파급은 제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그리스 악재가 오랫동안 노출돼온 만큼 그리스 이슈가 이미 시장에 어느 정도 반영된 측면도 있다.
내부적으로는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정책 기대감이 살아있어 국내 증시가 단기 조정을 거치고 빠른 반등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석현 연구원은 "그리스 문제를 배제하면 증시 개선세는 유효하다"며 "7월 초 추경 편성이 확정되면 지난달 한은의 금리 인하에 이어 국내 정책 요인이 추가되게 된다"고 설명했다.
◇ 투매보다는 관망…"2,000선 초반서 저가 매수 가능"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과도한 공포심으로 시장에 대응하기보다는 향후 그리스의 협상 과정과 외국인의 매매 동향 등을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윤서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당분간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겠지만, 남유럽 국채금리의 급등을 방어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이 추가로 정책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지나친 투매보다는 관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기 충격 후 빠른 회복을 예상하면서 저가 매수를 추천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최승용 토러스투자증권은 이번 주 금융시장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첫째 그리스 여론 향방에 대한 관찰, 둘째 혼란으로 인한 단기 조정 시 매수"를 제시했다.
그는 "조정이 제법 진행돼 코스피가 2,000선 초반까지 내려간다면 매수 기회가 될 것"이라며 "유럽 영향을 덜 받는 기업들에 대한 관심도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대신증권은 2,060선에서 지지력 테스트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경민 연구원은 "단기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및 중국 정책 모멘텀의 힘이 커지며 분위기 반전이 나탈 수 있다"며 "2,060선 지지력 확보 여부에 따라 매매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