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포화' 신경숙 뒤에 숨은 3대 문학출판사

"왜곡된 문학 제도 전복시킬 문학권력의 외부 조직해야"

표절 논란에 휩싸인 신경숙 작가의 단편 ‘전설’ 이 실린 작품집 '감자 먹는 사람들'을 낸 출판사 창비가 23일 책 출고를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황진환 기자
"신경숙 작가의 표절의혹이 제기된 저작을 출판한 창비와 문학동네, 문학과 지성사는 사실 여부를 체계적으로 검토해서 독자들에게 공표하고 결과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23일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 공동주최로 서울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명원 평론가는 '신경숙 표절 의혹'과 관련해 대형출판사들의 책임있는 후속조치를 촉구했다.

하지만 한국의 문학권력으로 비판 받는 3대 문학출판사들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 독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대형 문학출판사들의 성찰과 반성을 기대하지 말고 '문학권력의 외부를 구축해 왜곡된 문학질서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신경숙의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거센 역풍을 맞고 뒤늦게 대표가 사과한 창비는 신 작가의 단편 '전설'에 대해 아직까지 표절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신 작가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실상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단편 '전설'이 실린 작품집 '감자 먹는 사람들(2005년)'의 출고를 중단한 것이 전부다.


창비 염종선 이사는 이날 CBS 노컷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후속조치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문학적 논의는 서둘러 몰아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현재의 표절 문제에 대해 편집위원들 간에 비평적 논의를 계속 진행하고 있고 토론회와 계간지 등 공론의 장에서의 논의를 계속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창비 편집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도 '신경숙 표절 사태'에 대해 독자들에게 입장을 표명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인 문학평론가는 이에 대해 "신 작가와는 별개로 창비도 독자적인 법인 입장에서 표절 여부를 명쾌하게 가리고 후속조치를 해 소비자인 독자들에게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 모습. 황진환기자
문학동네 역시 '신경숙 신화 만들기'에 앞장선 주역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문학동네에서 지난 2010년에 출간해 50만부가 팔린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표절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문학동네는 아직까지 자신을 향한 비판과 여러 의혹들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으며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다만 문학동네 신형철 편집위원은 지난 19일 한국일보에 보내온 표절의혹 관련 답변서에서 문제가 된 우국(미시마 유키오)과 전설(신경숙)의 해당 부분이 "거의 같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학동네 권희철 편집위원도 "의식적 표절이 아니더라도 해당 대목이 상당히 유사한 것은 분명하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해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두 사람은 "거의 같다" "유사하다" 식의 유보적 표현을 통해 '표절이냐, 아니냐'는 사실 확정을 일단 피해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창비와 문학동네는 '문학출판부, 대표, 편집위원' 등의 발언을 통해 문인과 독자들에게서 제기되는 표절 의혹을 확정할 수 없고 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며 신경숙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는 작가이기에 표절 의혹을 들어 간명하게 해당 작가에 대한 어떤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창비와 문학동네가 '표절'이라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모호한 진술로 독자들을 우롱하며 '신경숙 보호하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이유다.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과 관련해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 공동 주최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화권력의 현재'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윤성호기자
30만 부가 팔려 신경숙 작가의 출세작이 되었던 두번 째 창작집 '풍금이 있던 자리'(1993)를 출간한 문학과지성사 역시 '신경숙 신화 만들기'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역시 지난 1999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기차는 7시에 떠나네'가 프랑스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10여년 전부터 거론돼왔지만 결국 유야무야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과지성사 역시 이번 신경숙 표절 사태와 관련해 '문학 권력'으로 지목됐지만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통해 대형 문학출판사들이 어떻게 한국 문학 제도를 왜곡시키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중요 문학출판사는 신인문학상 제도를 통해 '등단제도'를 장악하고 자기 매체 출신의 작가를 양성한다. 또 이들 신인작가는 중요 문학출판사들이 운영하는 계간지들을 통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학상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문학적 권위의 상징을 독점한다. 문학상을 수여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발간하고 또는 자기 매체 출신의 작가의 문학단행본을 간행함으로써 문단의 질서가 고착화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렇게 경직된 질서 속에서는 젊은 작가들이 창조성을 발휘하기 힘들다"면서 "왜곡된 문학 제도를 뒤집을 수 있는 문학권력의 외부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 문학권력의 외부는 아웃사이더 문인들과 젊은 작가들, 그리고 건강한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해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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