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초라한 변명… 사태 심각성 고민해야"

예술계, 독립기구인 창작윤리위원회 필요

- 기억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니 용서?
- 잠재적 표절 주장은 반성 표현으로 부적절
- 문학작품에 절대적 표절 기준은 없어
- 문장 뿐 아니라 플롯, 아이디어도 봐야
- 저작권 침해 아니지만 표절에 해당될 수도
- 저작권위원회 안에 표절 위원회 구성했지만
- 당사자와 다름없는 사람들이 판단 후 의혹 덮어버려
- 이번 표절 파문, 자정기능 통해 해결해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5년 6월 23일 (화)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기태 교수 (세명대 디지털 콘텐츠 창작학과)

◇ 정관용> 작가 신경숙 씨 경향신문과 단독인터뷰를 했네요. 묘한 표현을 썼습니다.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자신이 쓴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이라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표현을 썼어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글쓰기에서의 표절과 저작권’이라는 책을 내기도 하셨고요. 지금 한국전자출판학회 회장이십니다. 세명대학교 디지털 콘텐츠 창작학과 김기태 교수 나와 계시죠?

◆ 김기태>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방금 제가 읽어드린 그 표현이 맞죠?

◆ 김기태> 네.

◇ 정관용> 그것을 어떻게 보세요?

◆ 김기태> 제가 보기에는 한 마디로 진정성이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요. 이런 표현 때문에 그나마 남아있던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심정적 이유마저도 사라질 수 있는 그런 초라한 변명이라고나 할까요? 사과라는 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야 하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다면 변명에 불과하거든요. 다시 한 번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고민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정관용>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런 표현, 이건 또 어떻게 보세요?

◆ 김기태> 글쎄요. 처음에 했던 말하고 너무나 다른 표현인데요. 그래서 아마 제가 보기에는 나중에 제가 또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잠재적 표절에 대한 표현인 것 같아요. 자기는 기억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용서해 달라,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 말은 내가 기억하고서 이걸 옮겨 표절한 게 아니라 내 기억에도 없는 어떤 표현을 내가 옮긴 것 같다, 이런 말?

◆ 김기태> 네.

◇ 정관용> 그러니까 이거는 내가 이걸 표절했다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표절이라고 문제제기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기태> 그러니까 그게 이런 표현이거든요. 쉽게 말하면 내가 어디에서 봤는지는 모른다, 정말로. 내가 알고 그랬겠느냐? 그러니까 아마 내 잠재적 기억 속에 예전에 읽었던 글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기억조차도 지금은, 내 스스로 의심은 하지만 똑바로 밝힐 정도의 기억은 없다.

◇ 정관용>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 김기태> 물론 그럴 수도 있는데요. 저작권 침해관련 판례를 보다 보면 조금 아까 말씀드린 그 잠재적 표절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1970년대 초반으로 가는데요. 미국에서 비틀즈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이라는 사람이 다른 음악인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다룬 판결에서 처음 이 말이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요, 비록 고의성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죄의 증거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물며 윤리적 책임을 묻는 이번 사안에서는 변명의 수단일 뿐 반성의 표현으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고요. 또 우리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작가답지 않게 치밀한 자기점검이 없었다는 그런 자백이나 마찬가지죠.

◇ 정관용> 글쓰기에서의 표절과 저작권, 이런 책을 펴내시기도 했는데 문학작품에서 표절을 판단하는 기준이 딱 정할 수 있나요? 정리할 수 있나요?

◆ 김기태> 미묘한 수준까지 판단할 수 있는 그런 표절의 절대적 기준은 없습니다.

◇ 정관용> 그렇겠죠.

◆ 김기태> 요새 보면요. 음악의 경우에는 몇 소절, 글의 경우에는 몇 문장이 같으면 표절이고 그 이하면 표절이 아니다, 이런 식의 어설픈 지식이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데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김기태> 왜냐하면 전체 문맥을 봐야 하는 것이고요. 또 그 문장이 가지는 여러 가지 가치적인 차원을 또 봐야 하는 것이고요. 또 플롯이라든가 구성상의 여러 가지 배경이랄까요? 이런 것들을 다 판단해야 하는 것인데, 단순히 한 문장만 남의 것을 가져왔더라고 그 문장이 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아주 치명적인 표절이 될 수도 있는 거죠.

◇ 정관용> 그러면 이번에 문제가 된 신경숙 씨의 전설과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은 우리 교수님 보실 때는 어떻습니까?

◆ 김기태> 우선 저작권 침해라면 문제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일부 문장이 유사하고 플롯이 유사하다는 건 어떻게 보면 아이디어 차원의 접근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국의 전체적인 구성을 따와서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새로운 단편 전설을 만들었다라고 한다면 저작권 침해로는 따질 수 없지만 이것이 이제 표절로 가면요. 표절은 플롯만 아니라 아이디어도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특정 프로그램이라든가 작품의 구체적 내용 표현이 아닌 형식만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출처 표기가 없이 모방을 했다면 말씀드린 것처럼 저작권 침해 가능성은 맞지만 표절에 해당할 가능성은 매우 많이 높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법과 윤리의 경계라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저작권 침해는 법이고, 표절은 윤리고. 그렇죠?

◆ 김기태> 네.

◇ 정관용> 이 표절과 저작권 침해의 경계가 참 복잡하군요.

◆ 김기태>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표절과 저작권 침해를 동시에 구성하는 경우도 있고요. 또 어떤 경우에는 표절에는 해당되지만 저작권 침해는 아닌 경우도 있고.

◇ 정관용> 그렇군요. 그리고 절대적 기준을 딱 만들어서 누구나 대입하면 되고 이런 게 아니니까 그렇죠?

◆ 김기태> 그렇습니다.

◇ 정관용> 누군가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군요?

◆ 김기태>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렇다면 저작권 침해여부의 판단은 결국 저작권 문제는 표현하신 것처럼 법적 문제니까 결국 법정까지 가면 재판에서 정해지는 것일 거고요.

◆ 김기태> 네.

◇ 정관용> 표절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합니까? 현재 한국문단에서.

◆ 김기태> 뭐 우선 예전에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표절시비가 많았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이런 것을 가리기 위해서 2009년 12월인가요? 이때 한국저작권위원회 안에다가 표절위원회라는 것을 구성을 했었습니다. 저도 거기에 들어갔습니다만 그런데 요즘에는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고요. 그래서 우선은 분야별, 장르별 표절기준을 점검할 필요가 있는데요. 우리 문단에서는 지금까지 전부 제 식구 감싸기로 갔죠. 이게 무슨 말씀이냐면 제가 그래도 저작권 연구자로는 상당히 오랜 시간 관여를 해 왔는데 그런 저 조차도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이번에 알게 된 그런 당혹감이 아주 이만저만한 게 아니거든요.

◇ 정관용> 어떤 사실들이요?

◆ 김기태> 우선 이미 오래 전부터 유명작가들을 대상으로 제기된 일들이 많았다는 것이죠. 예컨대 뭐 권지예, 조경란, 황석영, 공지영 이런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분들이 이러저러한 표절의혹에 시달렸었는데.

◇ 정관용> 논란들이 있었다?

◆ 김기태> 그렇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명쾌하게 해결이 되거나 이러한 문제점들이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우리 문단 스스로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그런 반증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그 문단이 어떻게 대체했어야 옳았다고 보세요? 아니면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이제라도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세요?

◆ 김기태> 우선 이렇게 예를 들겠습니다. 법적심판의 경우에는 누군가 잘못을 하게 되면 당사자들이 완전히 배제된 사법부를 통해서 유무죄 여부가 가려지죠.

◇ 정관용> 그렇죠.

◆ 김기태> 그런데 우리 문단에서 제기되는 각종 문제에 대해서는 당사자나 다름없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판단하고 덮어버리기 일쑤였다는 말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어떤 애가 도둑질을 했어요. 그런데 그 잘잘못을 그 아이의 부모와 형제자매가 모인 가족회의에서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아무리 윤리적인 문제라 하더라도 객관성을 잃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이라도 좀 그런 것을 따질 수 있는, 예를 들면 우리 학교만 해도 연구윤리위원회가 있습니다.


◇ 정관용> 있죠. 모든 학교에 다 있습니다.

◆ 김기태> 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계에도 일종의 창작윤리위원회, 독립적인 기구가 있어야 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외국에는 이런 게 있나요?

◆ 김기태>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따지는 위원회랄까 이런 게 없고 대부분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지는 걸로 알고 있고요. 그러는 쉽게 표현을 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면 바로 자정능력에 의해서 해결이 된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정관용> 자정능력을 발휘할 자신이 없으면 어떤 창작윤리위원회 이런 거라도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다라도 맡겨라?

◆ 김기태> 그렇습니다.

◇ 정관용> 제일 좋은 것은 자정능력을 발휘하는 거겠죠?

◆ 김기태> 그래서 이번에 법으로 해결하자고 어떤 분이 밝혔는데 저는 거기에는 그래서 단호하게 반대를 합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면 이 정도의 파문은 자정기능을 통해서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다,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 정관용> 그렇죠. 그런데 지금 문단 전체가, 사실 이번에 표절부분을 강하게 질타하시는 문단 내부에서도 이것 검찰이 수사할 대상은 아니다라고 얘기하는데, 그런데 고발한 분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인데 오늘 이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자기변명이다, 고발 취하하지 않겠다라고 하고요. 이거 진짜 수사로 가는 것 아닌가요?

◆ 김기태> 글쎄요. 저는 이 분야의 법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그냥 저작권법에서만 비추어 본다면.

◇ 정관용> 그건 문제가 안 된다는 거죠.

◆ 김기태> 이 부분은 고소, 고발의 대상이 될 수 없고요. 그리고 뭐 정작 원작자는 이 세상에 있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친고죄라는 측면,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저작권법을 들이대기는 지금 어렵지 않느냐.

◇ 정관용> 저작권법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업무방해죄 이런 얘기를 하던데...

◆ 김기태> 네, 그런데 업무방해를 당했다고 지금 하는 출판사가 비호하고 나선 건데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런 어떤 검찰 수사 등등에 대해서도 문단이 어떻게 대응하느냐, 그게 관건이겠죠.

◆ 김기태> 맞습니다.

◇ 정관용> 네, 말씀 여기까지 들을게요. 고맙습니다.

◆ 김기태> 감사합니다.

◇ 정관용> 세명대학교 디지털 콘텐츠 창작학과 김기태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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