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금융권에 따르면 박상용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은 이달 말까지 우리은행에 대한 투자수요 점검을 마무리하고 내달 중 새로운 민영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올 하반기부터 우리은행의 5번째 민영화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 '4전 4패'…번번이 무산된 매각 작업
우리은행은 외환위기와 카드사태가 금융업계에 남긴 상처를 한몸에 간직한 곳이다.
1990년대 은행권을 주름잡던 5대 시중은행 중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쳐 우리금융지주가 만들어졌다.
이후 평화은행·경남은행·광주은행이 편입됐다.
정부는 이들 부실 금융회사를 모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 채권을 발행, 우리금융에 공적자금 12조8천억원을 투입했다.
이후 공모와 블록세일(지분 대량 분산매각) 등을 통해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정부 지분을 꾸준히 줄여왔다.
현재 예보의 우리은행 지분은 51.04%다.
그러나 2010년부터 거듭 시도한 민영화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첫 번째로 시도한 2010년에는 무려 23곳의 인수 후보가 등장했으나 대부분이 자격을 갖추지 못했고,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우리금융 컨소시엄'은 불참을 선언해 매각 작업이 중단됐다.
2011년과 2012년에는 일괄 매각 방식으로 재차 민영화를 추진했다.
당시 산은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가 각각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관치 금융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연달아 무산됐다.
3단계에 걸쳐 계열사들을 분리 매각한 후인 지난해에는 경영권 지분과 소수지분을 따로 매각하는 '투트랙' 방식으로 네 번째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소수 지분은 일부 매각에 성공했지만 경영권 지분 경쟁입찰에서 중국의 안방(安邦)보험 한 곳만 응찰하는 바람에 유효경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또 무산됐다.
◇ 매각 방식, 과점주주 체제로 선회하나
올 하반기 시작되는 다섯 번째 시도에서는 예보 지분을 쪼개 여러 곳에 분산매각하는 과점(寡占) 주주 방식이 유력하게 부상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은행 업종 자체의 매력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매입할 만한 투자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환은행을 팔고 떠난 론스타의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외국계 자본에 넘기는 것도 문제가 많은 만큼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장 좋은 대안을 찾기 위해 과점주주 분할 매각 방식을 포함한 모든 방식을 두루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방식을 선택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이 사라져 우리은행 매각 원칙의 중요한 틀인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공적자금 원금을 회수하려면 주당 1만4천800원 수준으로 매각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은행 주가는 9천원대 중반 수준이다.
매각 대상인 우리은행은 스스로 가치를 높여 원활한 민영화를 도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올해 들어 꾸준히 해외 기업설명회(IR)를 열어 투자자들을 상대로 개선된 재무상황을 알리고 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최근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본부장과 상무, 부행장 11명의 임기를 12월까지 연장했다.
올해 말까지의 실적을 종합적으로 살펴 정기 임원인사에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 역시 민영화를 앞두고 경영성과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의 하나라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 "정치권 차원서 매각 원칙 다시 고민해야"
우리은행 매각과 관련해 방법론적인 문제를 넘어 근본 원칙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법 부칙에는 우리은행 매각 원칙으로 ▲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 빠른 민영화 ▲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이 명시돼 있다.
새롭게 검토되고 있는 과점주주 매각 방식은 앞의 두 원칙과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들 원칙은 절대로 동시에 충족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말 '투트랙' 방식까지 실패로 돌아간 만큼 이제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인데,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정치권에서 결정해 주지 않으면 책임질 수 없는 일에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매각 이후에도 '헐값 매각' 등의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야당의 약속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유능한 경제정당'을 이야기하려면, 문재인 대표가 먼저 나서서 빠른 민영화가 우선이라는 점을 명확히 약속해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며 "결국 정치적 판단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조건 빠른 민영화를 추진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우리은행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우리 금융 시스템이 여전히 관치금융이다 보니 은행의 경쟁력과 시장 동향 등을 살펴 준비된 상태에서 민영화를 추진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대로 진행된 경향이 있다"면서 "그런 방식으로의 민영화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정부가 과거의 관치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경영진에 경쟁력을 갖춘 민간부문 인사를 대거 영입토록 하는 등 은행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