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잠재력 훼손 우려도…"정부 강력한 추경 편성해야"
지난달까지 완만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올해 우리 경제가 '상저하저'(上低下低) 양상을 나타낼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수출이 예상보다 크게 부진한 데 이어 믿었던 내수마저 메르스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대로는 3%대 성장률 달성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더블 딥'(경기 재침체)이 발생하면서 성장잠재력까지 훼손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저성장 장기화를 막기 위해 정책당국이 기존예산안보다 지출액을 늘리는 세출추경 편성과 같은 강력한 경기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경제연구기관과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애초 2분기 들어 경기가 살아나면서 상저하고(上低下高)의 회복 추이를 나타낼 것으로 예측됐던 한국 경제는 하반기에도 부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우려는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19일 '메르스 확산이 경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주재한 금요회(금요일마다 전문가를 초청해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듣는 자리)에서도 나왔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메르스에 따른 내수 부진이 단기적으로 경제회복을 둔화시킬 것으로 봤다. 특히 음식·숙박·교통 등 서비스부문 중심의 소비 둔화와 외국인 관광객 급감과 여행서비스 수출 감소에 따른 경기 위축을 우려했다.
한 참석 인사는 "메르스 충격이 한국 경제에 덮치면서 올해 3% 성장률 달성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데 참석자들이 공감을 표했다"며 "앞으로 각 기관의 성장률 전망 하향 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했다.
각 연구기관에서도 메르스 충격이 경기를 급랭시킬 수 있다는 보고서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소는 지난 1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메르스 사태가 6월 말까지 종결되면 국내총생산(GDP) 손실액은 4조425억원, 7월 말에 끝나면 9조3천377억원에 달하고, 석 달째인 8월 말까지 갈 경우 20조922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17일 경제 수정전망을 내놓으면서 한국 경제가 수출 부진과 내수 둔화로 올해 성장률이 3%에 못 미치는 2.8%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르스에 따른 성장률 하락은 최소 0.1%포인트로 추정했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메르스 사태가 한 달 안에 종식되면 경제성장률이 0.15%포인트 떨어지고 3개월간 지속되면 0.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분석을 종합할 때 한국은행이 내놓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3.1%) 달성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1.5%로 0.25%포인트 인하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경기 하방리스크가 커졌다. 4월 전망 수치보다는 조금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해 내달 수정전망 발표 때 성장률을 하향조정할 것임을 시사했다.
앞서 한은은 지난 4월 수정 경제전망 발표에서 한국경제가 올해 연간 3.1%의 성장률을 보이고, 반기별로는 상반기 2.7%(전년 동기 대비), 하반기 3.4%의 성장률을 나타내 상저하고의 성장경로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하반기 성장률이 워낙 나빴던 만큼 기저효과를 고려하면 전년 동기 대비로 볼 때 올해 하반기 성장률이 상반기보다 낮은 '상고하저' 형태로까지 가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반기 들어 경기 반등의 기울기와 속도가 낮아질 것임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하반기 경기가 상반기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부진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저하저의 형태를 띨 수 있는 것이다.
메르스 여파가 커질 경우 단순히 회복 지연을 넘어 더블 딥에 빠지는 상황을 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2013년 1분기 바닥을 치고 살아나던 경기가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재정절벽으로 '소프트 패치'(경기회복기의 일시적 침체)에 빠진 후 올해 들어 수출 급감과 메르스 충격이 겹치면서 더블 딥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더블 딥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부가 기존 예산안보다 세출을 늘리는 세출 추경을 과감히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성장률이 3%대 밑으로 떨어질 경우 성장잠재력 자체의 훼손을 우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 진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2011년 이후 한국 경제는 장기가 불안정한 성장을 보이고 있어 저성장 장기화에 따른 성장잠재력 약화 우려가 있다"며 "올해 성장률이 2013년 성장률(2.9%)에도 미치지 못할 경우 디플레이션 우려가 과도하게 확산돼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비관적으로 치우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세수부족으로 인한 성장률 하락이 우려됨에 따라 세입추경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나아가 메르스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확대될 때는 피해계층 지원 확대를 위한 세출추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