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환 "(한)나한이 형, 우리 꼭 다시 만나요"

[임종률의 스포츠레터]실패했지만 진심을 전했던 LG 내야수 잭 한나한

'지환아, 무럭무럭 잘 커야 해' 지난 18일 한국 프로야구를 떠나며 고별 기자회견을 가졌던 LG 전 내야수 잭 한나한(오른쪽)은 LG 유격수 오지환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자료사진=LG)
잭 한나한(35)은 갔습니다. 약 한 달, 짧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아직 한국에는 남아 있지만 소속팀 LG와 KBO 리그에서는 적을 지웠습니다.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에서 한나한이 뛴 기간은 한 달 남짓. 지난달 7일 잠실 두산전에서 데뷔한 한나한은 지난 13일 한화전이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32경기만 뛰고 지난 15일 웨이버(권리 포기) 공시됐습니다. LG는 그 자리를 루이스 히메네스(27)로 채웠습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한나한은 방출된 셈입니다.

그런 외국인 선수가 고별 기자회견을 한다? 34년 KBO 리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10년, 아니 5년, 더 인심을 써서 3년 정도만이라도 뛰었다면 모를까, 겨우 한 시즌의 4분의 1 정도 뛴 선수가 따로 회견을 연다? 한나한은 18일 KIA와 홈 경기에 앞서 잠실구장에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사실 궁금한 마음이 있기도 했습니다. 'LG로 돌아온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제목의 기사를 보기도 했던 터라 혹시 하는 생각이 있기도 했습니다. 선수가 아닌 은퇴를 발표한 뒤 롯데 라이언 사도스키처럼 스카우트 업무 등으로 LG와 연을 이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은 한나한이 그동안 한국에서 받은 고마움을 순수하게 전하기 위해 자청한 자리였습니다. 스프링캠프에서 얻은 종아리 부상으로 개막 한 달이 넘어서야 1군에 합류하고, 이후에도 완전치 않은 몸으로 수비에서 제몫을 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도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과 가족을 따뜻하게 품어준 한국 팬들과 LG 구단에 대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 간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크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LG 전 내야수 잭 한나한이 자청해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고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자료사진=LG)
사실 LG의 한나한 영입은 실패입니다. 100만 달러(약 11억 원)의 거액을 들여 데려온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32경기만 나섰습니다. 타율 3할2푼7리 4홈런 22타점, 방망이는 괜찮았지만 주루와 수비에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나한은 인터뷰에서 "허리가 아파 진단 결과 재활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면서 "미국으로 돌아가 거취를 고민하겠다"며 은퇴 기로에 놓인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겁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LG가 용병 대실패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해 마무리를 훈훈하게 포장하려고 회견을 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모양새로만 보면 그렇게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선수가 자청했다고 해도 구단에서 여러 상황을 고려해 만류를 할 수도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어떻게 열렸는지를 떠나 한나한의 진심만큼은 오롯이 전해졌습니다. 30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나한은 한국을 떠나기 싫어 울고 있다는 아들 조니(3)의 일화까지 들려주며 진정 아쉽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사실 이번 회견은 LG 구단이 야구 기자단 전체에 공지한 게 아니라 한나한이 인터뷰를 자청했던 17일 밤 잠실구장에 있던 몇몇 취재진에만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자회견 기사가 미리 나가면서 결과적으로 전체에 알려지게 된 셈입니다. 어쨌든 지난해 감독에게 폭언을 하며 좋지 않게 한국을 떠난 거물급 용병과는 확연한 차이는 납니다.)

'나한아, 아파도 잘 하나' 전 LG 내야수 한나한이 지난달 17일 SK전에서 한국 무대 첫 홈런을 때려낸 뒤 최태원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자료사진=LG)
한나한의 진심은 떠나는 LG에 대한 걱정에서도 읽혔습니다. 한나한은 올해 하위권에서 고전하고 있는 LG에 대해 애정어린 조언을 내놨습니다. 특유의 젠틀한 표현이었지만 뼈가 있었습니다.

"야구라는 종목은 업다운이 심하고 멘탈이 중요한데 메이저리그(MLB)에서 여러 팀을 뛰었지만 최고의 팀은 선수들은 기복이 짧고 꾸준하게 이뤄지는 팀이다. 베테랑만 또는 어린 선수뿐만 아니라 이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섞인 팀이 최고의 팀인데 LG도 그런 부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겁니다.

고참들이 부상으로 신음하고, 신예들은 이제 경험을 막 쌓아가는 LG의 모습을 짧은 시간이지만 잘 파악했습니다. 한나한은 디트로이트와 오클랜드, 시애틀 등 MLB 경력이 많은 베테랑입니다. 2011~2013시즌에는 클리블랜드와 신시내티에서 추신수(33 · 텍사스)와 한솥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빅리그 통산 614경기 타율 2할3푼1리, 29홈런, 175타점으로 특출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마이너리그(861경기)까지 그 경험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런 한나한이 주목한 LG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주전 유격수 오지환(25)입니다. 한나한은 10살 어린 한국 선수에 대해 "팀에 젊은 선수가 많지만 오지환이 내게 가장 질문도 많이 했고, 성장도 많이 한 기억이 난다"고 꼽았습니다.

이어 "오지환과 매일 뛰는 것만으로도 많이 즐거웠고, 미국을 가도 그가 뛰는 것을 지켜볼 생각"이라며 두터운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배우는 데 배고파 하는, 성장 가능성이 많은 선수들이 언젠가 LG의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었던 것일까요? 오지환은 이날 경기에서 7회 쐐기 2타점 2루타를 뽑아내는 등 2루타 2개 1득점까지 펄펄 날았습니다. 5-3 승리를 이끌며 한나한의 기대에 멋지게 부응한 의미있는 활약이었습니다.

'나한이 형이 보는 마지막 경기' LG 내야수 오지환이 18일 KIA와 홈 경기에서 7회 쐐기 2타점 2루타를 치고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모습.(잠실=LG)
오지환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경기 후 한나한의 말을 전해들은 오지환은 "마음 한편으로 가슴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이어 "라커룸이 바로 옆자리여서 얘기도 많이 했고, 경험담을 많이 들려주고 야구도 많이 알려줬다"면서 "그만큼 많이 정들었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나한의 쾌유와 재회에 대한 굳은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오지환은 "인터뷰에서 치료해봐야 (현역 연장 여부를) 안다고 하니까 꼭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한나한의 빠른 쾌유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겠다"고 진심을 담았습니다.

이어 "나 역시도 팀이 더 많이 이기고 좋은 분위기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서둘러 19일부터 진행되는 넥센과 목동 원정을 준비해야 한다며 총총히 더그아웃을 떠나 한나한의 짐이 정리돼 있을 라커룸으로 향했습니다.

한나한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LG 챔피언스 파크에서 머문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스프링캠프 이후 그곳에서 재활 훈련을 거쳐 1군에 합류한 겁니다.

인성이 좋은 한나한은 그때부터 어린 선수들로부터 '나한이 형'이라고 불렸답니다. 과연 오지환과 10살 위의 형님 나한이 형, 그리고 LG의 이자정회(離者定會)는 이뤄질 수 있을까요?

'아들아, 우리 꼭 한국 다시 오자' LG 전 내야수 잭 한나한(오른쪽)과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응원을 하고 있는 아들 조니의 모습.(자료사진=LG, 스카이스포츠 중계 화면 캡처)
p.s-지난 11일 두산과 잠실 라이벌전을 앞둔 한나한의 가족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와 아내, 두 아들들까지 집안의 가장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잠실 나들이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한나한이 언급한 아들 조니(3)가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선수나 구단 관계자 등 낯익은 인물들에게 "안냐세오"라고 우리 말로 인사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찌나 귀엽던지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한나한 가족과 함께 하고 싶더군요.

그 아들 조니는 한국의 영어 유치원을 다니며 벌써 정이 들었다면서 미국으로 떠나기 싫어 운다고 했습니다. 과연 조니가 한국어 인사말을 다시 하는 모습을 듣고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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