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에서 한나한이 뛴 기간은 한 달 남짓. 지난달 7일 잠실 두산전에서 데뷔한 한나한은 지난 13일 한화전이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32경기만 뛰고 지난 15일 웨이버(권리 포기) 공시됐습니다. LG는 그 자리를 루이스 히메네스(27)로 채웠습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한나한은 방출된 셈입니다.
그런 외국인 선수가 고별 기자회견을 한다? 34년 KBO 리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10년, 아니 5년, 더 인심을 써서 3년 정도만이라도 뛰었다면 모를까, 겨우 한 시즌의 4분의 1 정도 뛴 선수가 따로 회견을 연다? 한나한은 18일 KIA와 홈 경기에 앞서 잠실구장에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사실 궁금한 마음이 있기도 했습니다. 'LG로 돌아온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제목의 기사를 보기도 했던 터라 혹시 하는 생각이 있기도 했습니다. 선수가 아닌 은퇴를 발표한 뒤 롯데 라이언 사도스키처럼 스카우트 업무 등으로 LG와 연을 이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은 한나한이 그동안 한국에서 받은 고마움을 순수하게 전하기 위해 자청한 자리였습니다. 스프링캠프에서 얻은 종아리 부상으로 개막 한 달이 넘어서야 1군에 합류하고, 이후에도 완전치 않은 몸으로 수비에서 제몫을 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도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과 가족을 따뜻하게 품어준 한국 팬들과 LG 구단에 대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 간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겁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LG가 용병 대실패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해 마무리를 훈훈하게 포장하려고 회견을 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모양새로만 보면 그렇게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선수가 자청했다고 해도 구단에서 여러 상황을 고려해 만류를 할 수도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어떻게 열렸는지를 떠나 한나한의 진심만큼은 오롯이 전해졌습니다. 30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나한은 한국을 떠나기 싫어 울고 있다는 아들 조니(3)의 일화까지 들려주며 진정 아쉽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사실 이번 회견은 LG 구단이 야구 기자단 전체에 공지한 게 아니라 한나한이 인터뷰를 자청했던 17일 밤 잠실구장에 있던 몇몇 취재진에만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자회견 기사가 미리 나가면서 결과적으로 전체에 알려지게 된 셈입니다. 어쨌든 지난해 감독에게 폭언을 하며 좋지 않게 한국을 떠난 거물급 용병과는 확연한 차이는 납니다.)
"야구라는 종목은 업다운이 심하고 멘탈이 중요한데 메이저리그(MLB)에서 여러 팀을 뛰었지만 최고의 팀은 선수들은 기복이 짧고 꾸준하게 이뤄지는 팀이다. 베테랑만 또는 어린 선수뿐만 아니라 이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섞인 팀이 최고의 팀인데 LG도 그런 부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겁니다.
고참들이 부상으로 신음하고, 신예들은 이제 경험을 막 쌓아가는 LG의 모습을 짧은 시간이지만 잘 파악했습니다. 한나한은 디트로이트와 오클랜드, 시애틀 등 MLB 경력이 많은 베테랑입니다. 2011~2013시즌에는 클리블랜드와 신시내티에서 추신수(33 · 텍사스)와 한솥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빅리그 통산 614경기 타율 2할3푼1리, 29홈런, 175타점으로 특출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마이너리그(861경기)까지 그 경험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런 한나한이 주목한 LG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주전 유격수 오지환(25)입니다. 한나한은 10살 어린 한국 선수에 대해 "팀에 젊은 선수가 많지만 오지환이 내게 가장 질문도 많이 했고, 성장도 많이 한 기억이 난다"고 꼽았습니다.
이어 "오지환과 매일 뛰는 것만으로도 많이 즐거웠고, 미국을 가도 그가 뛰는 것을 지켜볼 생각"이라며 두터운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배우는 데 배고파 하는, 성장 가능성이 많은 선수들이 언젠가 LG의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었던 것일까요? 오지환은 이날 경기에서 7회 쐐기 2타점 2루타를 뽑아내는 등 2루타 2개 1득점까지 펄펄 날았습니다. 5-3 승리를 이끌며 한나한의 기대에 멋지게 부응한 의미있는 활약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나한의 쾌유와 재회에 대한 굳은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오지환은 "인터뷰에서 치료해봐야 (현역 연장 여부를) 안다고 하니까 꼭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한나한의 빠른 쾌유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겠다"고 진심을 담았습니다.
이어 "나 역시도 팀이 더 많이 이기고 좋은 분위기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서둘러 19일부터 진행되는 넥센과 목동 원정을 준비해야 한다며 총총히 더그아웃을 떠나 한나한의 짐이 정리돼 있을 라커룸으로 향했습니다.
한나한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LG 챔피언스 파크에서 머문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스프링캠프 이후 그곳에서 재활 훈련을 거쳐 1군에 합류한 겁니다.
인성이 좋은 한나한은 그때부터 어린 선수들로부터 '나한이 형'이라고 불렸답니다. 과연 오지환과 10살 위의 형님 나한이 형, 그리고 LG의 이자정회(離者定會)는 이뤄질 수 있을까요?
그때 한나한이 언급한 아들 조니(3)가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선수나 구단 관계자 등 낯익은 인물들에게 "안냐세오"라고 우리 말로 인사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찌나 귀엽던지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한나한 가족과 함께 하고 싶더군요.
그 아들 조니는 한국의 영어 유치원을 다니며 벌써 정이 들었다면서 미국으로 떠나기 싫어 운다고 했습니다. 과연 조니가 한국어 인사말을 다시 하는 모습을 듣고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