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성은 수 차례 남의 신분증으로 딴 사람 행세를 했지만, 경찰의 확인 과정은 허술하기만했다.
부산 동부경찰서는 17일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제시하고 서명을 도용한 혐의(공문서 부정행사·사서명 위조 및 동행사)로 장모(49)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장씨는 지난달 23일 오후 3시쯤, 부산 동구의 한 기원에서 일행 4명과 함께 도박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히자 평소 외우고 있던 김춘삼(51) 씨의 주민번호로 신분을 속이고 즉결심판 동의서에 김씨의 서명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난데없이 즉결심판서를 받은 김씨는 경찰에 "그동안 하지도 않은 범행을 뒤집어 써서 인생을 망쳤다"며 억울함을 털어놓으면서 뜻밖의 사실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김씨의 명의를 도용한 장씨를 붙잡기 위해 경찰은 수사에 나섰고 15일 오후 동구 범일동의 한 은행 앞에서 결국 장씨를 붙잡았다.
경찰에 붙잡힌 장씨는 이때도 친구의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며, 딴 사람 행세를 했고 경찰은 지문을 확인한 끝에 장씨의 거짓말을 밝혀냈다.
이미 장씨는 김씨의 서명을 도용한 혐의로 사하경찰서에 의해 수배된데다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쫓기던 신세였다.
경찰조사에서 장씨는"1986년 길에서 김씨의 주민등록증을 주웠는데 주민번호를 외워 경찰에 붙잡히거나 안 좋은 일을 당할 때마다 김씨로 위장했다"며 "어릴 적 가정형편이 어려워 앵벌이 생활을 하면서 거지왕 김춘삼을 우상으로 여겼는데 우연히 주운 신분증의 이름이 똑같아 주민등록증을 버린 뒤에도 김씨 행세를 해왔다"고 진술했다.
장씨가 김씨 명의를 도용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지난 1987년 마약 투약 혐의로 붙잡히자 김씨로 신분을 속여 징역까지 산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로도 마약, 절도, 폭력 등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기만 하면 장씨는 김씨의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번호 등을 제시했다.
수십년 동안 남의 명의로 살면서 징역까지 살았지만, 경찰은 단 한번도 장씨의 명의 도용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신분 확인을 허술하게 했다.
이 때문에 대학생 시절 신분증을 도난 당한 김씨는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상처 속에 인생을 보내야 했다.
김씨는 1986년 대학생 시절 집에 도둑이 들어 신분증이 사라진 뒤 입사면접만 보면 고배를 마시고 불심검문에서 빈집털이범으로 경찰에 연행되는 등 알 수 없는 피해를 봤다.
김씨는 2000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약, 절도, 폭력죄로 전과자가 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법원에 진정을 넣어 전과를 삭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장씨의 계속된 신분 도용에 김씨는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폭행·음주 뺑소니 등의 사건에 연루되며 누명을 쓴 적이 한 두번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30여년간 남에게 피해를 준 장씨의 신분 세탁은 끝내 막을 내렸지만, 경찰의 허술한 신분 확인 탓에 인생이 망가진 김씨의 시간과 삶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