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왜 '타고난 싸움꾼'으로 불릴까?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사진=청와대 제공)
메르스 사태가 연일 확산되면서 이번 주말이면 한 달이 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에 대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세월호 참사' 나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성완종 리스트' 같은 엄청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거나 책임을 지기보다는 본질을 흐리거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을 "타고난 싸움꾼"이라고 평가했고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고지전에는 아주 능한 정치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왜 '타고난 싸움꾼'으로 불릴까?"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Why뉴스 전체듣기]▶ '타고난 싸움꾼' 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지난 5일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 정치평론가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이 한 말인데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을 보면서 '내추럴 본 파이터(natural-born fighter)' '타고난 싸움꾼' 이라고 표현했다.

이철희 소장은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서 "박 대통령의 특징을 영어로 표현하면 "'내추럴 본 파이터(natural-born fighter)'"라면서 "타고난 싸움꾼이란 걸 어디서 느꼈느냐 하면 사스에 대해 발언하면서 그걸 굳이 아니라고 설명하더라"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메르스의)양상이 사스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면서 "메르스의 경우에 우리가 이전에 경험을 한 번도 못해봤던 감염병"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기관이 독자적으로 메르스를 해결하려고 할 경우에 혼란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메르스와 사스와의 양상이 다르다"고 언급한 것은 참여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3년 사스가 중국을 휩쓸면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사망자가 1명도 발생하지 않았고 사스 예방 모범국이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언론보도를 의식한 발언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 지방자치단체 언급은 박원순 시장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철희 소장은 "그런 평가를 그러려니 하면 될 텐데 굳이 아니라고 상황이 다르다고 하는 게 별로 논리적인 설득력도 없이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이 소장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싸움꾼은 전체적인 국면을 보기보다 이기느냐 지느냐 에만 관심을 갖는다"면서 "(박 대통령은)자신이 밀리고 손해 보는 건 용납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 '고지전에 능하다'는 건 무슨 얘기냐?

지난해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 전쟁에서 고지전은 매우 중요하다. 특정 고지를 차지하면 인근 30~40㎞의 지역을 점령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고지전'이라는 영화도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에 '펀치볼', '백마고지' 등은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대표적인 고지들이다. 고지전에 능하다는 얘기도 싸움을 잘한다는 얘기와 맥을 같이한다. 다만 전체 전쟁의 승패와는 관계없이 전투에서의 승리만을 말하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특징을 한마디로 '고지전에 아주 능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그게 무슨 얘기냐?'라고 물으니 "대통령 자신에게 불리한 이슈가 발생하면 물 타기를 하거나 새로운 이슈를 제기해서 이슈를 덮고 지나가거나 상대를 고립화시켜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자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으면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고 생존자가 더 이상 발견되기 어려운 상황이면 실종자 시신 인양에 전력을 기울인 다음 곧바로 선체 인양에 나서서 침몰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구조는 왜 제때 이뤄지지 못했는지? 지휘체계는 왜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는지? 이런걸 밝혀내서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문제를 외면하고 다른 이슈를 만들어서 비켜가려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때 유가족이나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이나 세력들을 어느새 반대편으로 만들어 그쪽 세력을 고립화시키고 거기에 약간의 색깔을 덧칠하고 다른 이슈를 내세워서 이슈전환을 시도하고 그래도 안 될 때에는 콘크리트 지지층에 SOS를 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렇게 되면 (콘크리트 지지층으로부터)금방 화답이 오고, 따라서 원래 이슈는 흐려지고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만 이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전개과정을 보면 이 설명이 정말 신기할 정도로 들어맞는다. 그래서 박 대통령을 두고 "타고난 싸움꾼"이라거나 "고지전에 능하다"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 그 두 가지 사례만으로 '싸움꾼'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하지 않나?

故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 (사진=윤성호 기자)
= 그런 사례는 많다.

메르스 사태에 앞서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를 최후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월 9일에 일어난 일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세 차례 공식 언급을 한다.

12일 검찰의 특별수사팀 출범과 관련해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는 아주 원론적인 입장만 대변인을 통해 발표했다. 그리고 4월 20일 중남미 4개국 방문 중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20일 페루 현지에서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에 대해 보고 받았다"며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대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는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비켜나갔다.

박 대통령은 27일 귀국한 뒤 재·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8일 이완구 총리의 사의 수용에 대해 유감을 나타내면서 성완종 전 회장의 사면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했다. 이른바 물 타기에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은 김성우 홍보수석을 통해 "최근 사건의 진위여부는 엄정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고 검찰이 이번 기회에 반드시 국민들의 의혹 사항을 밝혀내기를 바란다"며 "이번에 반드시 과거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를 척결해서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최근 고 성완종 씨에 대한 두 차례 사면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을 꺼낸 뒤 "성완종 씨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과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면서 결국 오늘날과 같이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되었다"며 특사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이 사면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으로 거론됐던 2012년 대선자금 의혹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검찰이 불구속 기소하기로 방침을 정한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는 개인비리지만 홍문종 의원과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건너간 돈은 대선자금과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홍문종 의원만 소환한 뒤 두 사람에 대해서는 두 차례 서면조사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 진전이 없는 것이다. 세 명의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서면질의서를 보낸 뒤 이렇다 할 움직임조차 없다.

▶ 청와대 문건유출사건 때도 그랬나?


지난해 12월 10일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하고 있는 정윤회 씨 (사진=박종민 기자)
= 그렇다. 지난해 정국을 흔들었던 '청와대 문건'의 핵심은 이른바 '십상시의 실체'와 베일에 가린 '정윤회 씨의 역할'이 무언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문건'은 '찌라시'로 '문건 유출 사건'은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했고, 실제 검찰수사는 문건내용에 대해서는 형식적인 수사로 그친 반면 문건유출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그리고 검찰의 수사결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검찰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가 기각당하자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이라는 거창한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기소했다. 그렇지만 혐의내용은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면서 관리대상인 박지만 씨에게 조심하라는 취지의 문건을 박관천 경정을 통해 전달한 것이 전부다.

이 사건으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는 두 차례나 검찰에 소환됐지만 정윤회 씨는 단 한차례만 소환됐고 자택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조차 벌이지 않았다. 검사출신의 김하중 전남대 로스쿨 교수는 당시 페이스북에 "의혹의 핵심에 있는 정윤회 씨는 가택수사도 하지 않은 채 수사를 종결했다"면서 "(검찰이)수사비례원칙을 들먹이고 있는데 가증스럽고 역겹기까지 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건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원세훈 국정원장과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실체를 파헤치고 재판에 회부하려고 하자 뜬금없는 '혼외자 사건'으로 본말을 전도시켰다.

▶ 그렇다면 메르스 사태도 새로운 이슈로 덮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12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메르스 지역사회 확산 차단을 위한 민관합동 대책회의’ 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이 부분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단 검찰이 의료혁신투쟁위원회라는 단체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르스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고발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하고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일단은 통상의 고소고발 사건 처리 절차에 따른 것이지만 메르스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수사에 착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심을 살 수 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원순 시장을 겨냥해 발언을 했다가 '박원순 시장은 메르스를 잡고 박 대통령은 박원순을 잡는다'는 말까지 들었기 때문에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쉽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미 일부 극우단체들이 박원순 시장 규탄집회를 열기도 하는 등 그런 조짐의 전조가 보이고 있기는 하다.

다만 '메르스 사태'는 다른 사건들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사건들은 특정한 상대가 있었지만 메르스는 불특정 다수의 국민이 대상이다. 그것도 박 대통령의 지지가 두터운 서울 강남지역이 포함돼 있고 누가 감염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이럴 때는 희생양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세월호 참사 초기에 모든 국민들의 시선을 세모그룹 유병언 회장에게 돌린 것과 비슷한 방법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국민안전처 등 희생양을 내세워서 책임을 묻고 집중 공격하도록 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 "고립시킬 대상이 없다면 대리만족이라고 주려고 할테고 앞으로 남은 건 누군가 희생양을 구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사례를 살펴보면 일종의 패턴이 있다"고 설명했다.

▶ 박 대통령이 왜 싸움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냐?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사진=윤창원 기자)
= 그게 의문이다. 박 대통령과 가까웠거나 가까운 사람들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다만 박 대통령이 싸움꾼으로 불리는 이유는 아무래도 여론을 의식한 정치를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에는 대체로 공감한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말로는 지지율에 일희일비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백희백비한다"면서 "박 대통령은 지지율에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이던지 한다. 그래야 국정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행보를 봐도 지지율이 일정비율 이상일 때는 눈치 보지 않고 뜻대로 밀어붙인다. 황교안 총리후보자를 지명할 때는 지지율이 40%대를 회복했을 때이다. 지난달 11일 리얼미터의 조사에서 44.2%로 오랜만에 40퍼센트 대를 넘어서자 열흘 뒤인 21일 황교안 후보자를 지명한 것이다.

전직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황 후보자 지명은 지지율이 40%대를 넘어서니까 뜻대로 강행했지만 지지율이 급격하게 빠지니까 미국 방문도 미루고 여론의 추이를 살피는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여론 눈치 보기 행보에 대해서 정치평론가나 심지어 친박내부에서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라고 비판한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정부 관련 부처는 무능할뿐더러 책임지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으니, 그 점에서 세월호 사건을 꼭 닮았다"면서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를 들여다보면 그 바닥에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 실패와 소통 부재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철희 소장은 "대통령은 자기가 좀 부족하고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면 안 되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주 최고위원회에서 "박근혜 정부 내각에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 이것이 근본 문제"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서 최고위원은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전부 대통령만 쳐다보면서 책임지고 일을 하지 않는다. 제대로 일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도 이걸 아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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