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균 배달은 단순 사고? '미군 입만 바라보는 정부'

'한국이 미군 생물학전 시험장' 의혹 제기에도 확인할 권한 없어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미군의 살아있는 탄저균 배달 사태가 발생한지 보름이 훌쩍 지났지만 국방부를 비롯한 우리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미군이 관련 사실을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은 지난달 27일. 논란이 일자 질병관리본부는 다음날 미군 오산 공군기지를 방문해 탄저균 반입과 폐기 등 처리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질병관리본부 등에 따르면 해당 탄저균 표본은 지난달 초쯤 오산 공군기지에 배달됐다. 해당 표본은 포자 형태의 액체 1㎖로 새로 들여온 유전자 분석 장비 시연 행사에 쓰일 계획이었다.

미군은 지난달 21일쯤 사전처리를 위해 해동된 상태로 보관됐다가 지난달 27일 미 국방부로부터 해당 탄저균 표본이 활성화된 상태일 가능성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폐기됐다.

당시 22명의 미군 소속 군인과 연구원이 해당 탄저균 보관과 해동, 폐기 등에 참여했으며 미군 측은 이들에게 어떠한 감염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질병관리본부 측이 오산 미군기지를 방문했을 당시 미군 측으로부터 설명받은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군 측의 조치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받은 것에 불과하다.

사건이 알려질 당시에는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된 국가는 한국 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13일 현재는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영국에도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살아있는 탄저균 배달은 최근 일이 아니라 지난 2007년부터 계속돼 온 것으로 드러나 이번 사태가 단순히 배달 '사고'가 아닌 미군 측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미군 측은 우리 정부에 한국에서 탄저균을 이용한 실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미 8년전부터 각국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를 그대로 믿기 힘들다는 것.

특히, 주한미군이 지난 2013년 6월부터 한반도 생물학전 대응 전략인 '주피터 프로그램' 도입에 착수해 현재까지 상당한 진척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이 미군의 생물학전 시험장이 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미군은 용산과 오산 등 3곳에 생물학전 관련 실험실을 만들어놓고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 정부는 미군 소유 시설이라는 이유로 그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한미군은 "공개할 정보가 없다"며 입을 닫고 있는 실정이며 우리 국방부나 외교부 역시 미군 관할 사항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군 관계자는 "탄저균 배달 사고와 관련한 모든 조사는 전적으로 펜타곤(미 국방부) 소관 사항"이라며 "지금까지 공개된 사실 외에 추가 정보는 펜타곤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이번 사태와 관련해 외교부, 국방부, 질병관리본부 등 관계 부처가 모여 범정부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미군의 위험물질 반입을 원천적으로 제한할 수 없는 현행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문제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SOFA 9조는 대한민국에 입국하는 미군 구성원, 공용봉인(封印)이 있는 미국 군사우편, 미국 군대에 탁송되는 군사화물은 세관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SOFA 9조 개정 요구는 현재 미 국방부가 진행하고 있는 조사결과에 따라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미 국방부가 지금까지 밝힌대로 이번 사태가 실수에 의한 단순한 배달 사고이며 그동안 탄저균 등 위험물질 반입신고와 관련 국제협약을 잘 지켜왔다고 밝힐 경우 우리 정부가 SOFA 9조 개정을 요구할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미 국방부의 조사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이 실수라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마당에 이를 못믿겠다고 문제제기를 할 경우 외교적 마찰이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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