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드라마는 오랫동안 재벌가를 비롯한 상류층들의 이야기를 다뤄왔다. 약간의 변주만 있을 뿐, 상류층을 중심으로 한 신데렐라 스토리는 드라마의 공식과도 같았다. 이 과정에서 서민과 다른 상류층의 화려하고 부유한 모습이 부각됐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 속 상류층은 선망과 동시에 풍자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 맹목적 환상에서 벗어나 돈과 권력에 얽힌 어두운 일면까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종영한 SBS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들')는 상류층의 이중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다.
'풍들'에 등장하는 상류층 인물들은 항상 격식 있고 우아한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가 재밌어지는 부분은 바로 이런 인물들의 속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겉과 달리 이들의 본질은 지독한 속물근성으로 가득 차 있다. '풍들'은 이런 '갑'들을 풍자하고 폭로하며 호평 받았다.
또 다른 SBS 드라마 '가면'과 '상류사회' 역시 상류층의 이야기를 중심에서 다루고 있다. 두 드라마 모두 표면적으로는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류층에 대한 미묘한 풍자가 존재한다.
'가면'의 상류층은 드라마 제목대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평범한 서민 변지숙(수애 분)이 얼굴 생김새가 똑같은 상류층 서은하(수애 분)의 삶을 살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도치 않게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속, 변지숙이 바라보는 상류층의 이면에 감춰진 모습들이 관전 포인트다.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풍들'과 마찬가지로 상류층의 화려한 껍데기를 벗겨낸다.
'상류사회'는 '갑'과 '을'의 로맨스를 기반으로 한다. 네 청춘 남녀의 사랑 속에는 '갑을'의 역학관계와 상류층에 대한 정반대의 시각이 녹아있다.
재벌가 자제 장윤하(유이 분)가 몸 담고 있는 '상류사회'는 사람이 사람다울 수 없는 곳이다.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장윤하에게 그곳은 냉혹하기만 하다.
그러나 '갑'이 되고 싶은 '을', 최준기(성준 분)에게 장윤하의 세계는 이상향이다. 그는 장윤하와의 관계를 단순히 사랑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신분 상승의 발판으로 여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우리나라 미니시리즈에서 원래 재벌은 이상적 동경의 대상으로 그려지거나 만악의 근원 혹은 인간적으로 그려진다"면서 "이 두 가지 방식을 오가는데 한 동안 재벌가 자제들을 왕자님으로 그리는 드라마가 많이 나오다보니 이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한 쪽으로 트렌드가 치우치면 다른 트렌드가 나와 교체가 된다. 요즘에는 재벌의 이면과 부정적인 면을 그리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이다. 아마 이후에는 또 다시 재벌을 이상적 동경의 대상으로 그리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