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염돼 아무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메르스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면 어떻게 될까. 정부가 감염 경로를 파악하지 못해 방역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연구 논문이 나와 주목된다.
10일 학계에 따르면 독일 본 대학 바이러스학 연구소의 크리스티안 드로스텐 교수 연구팀은 최근 '랜싯'에 게재한 논문에서 이 같은 방식의 메르스 전파가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연구팀은 메르스의 감염 원인과 경로를 규명하기 위해 2012년 12월부터 1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 전역에서 1만9명의 혈액 샘플을 확보, 메르스 항체가 형성됐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15명의 혈액에서 항체가 나왔다. 1만9명 중 15명(0.15%)이 메르스에 감염된 적이 있다는 의미다. 전체 사우디아라비아 국민의 0.15%를 단순 계산하면 4만4천951명에 달한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내 메르스 확진 환자가 1천여명에 불과하다는 공식 집계와 큰 차이가 있다. 상당수 감염자가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고 스스로 치유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연구팀은 낙타와 자주 접촉하는 목동과 도축업자의 메르스 항체 보유율이 각각 2.3%와 3.6%로 전체의 0.15%에 비해 눈에 띄게 높은 사실을 확인했다. 대개 젊고 건강한 이들이었다.
연구팀이 목동과 도축업자에 주목한 것은 메르스가 낙타와 접촉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른바 '첫 확진 환자'가 낙타와 접촉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15∼44세의 사회적 활동이 왕성한 무증상(subclinical) 감염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봤다.
논문을 직접 검토한 한 종합병원 의사는 "젊은이들이 증상을 겪지 않는 것은 좋은 소식일 수 있지만, 아무도 모르게 메르스가 퍼질 위험이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메르스는 기저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치명적"이라며 "방역당국은 의료기관 내 감염이라 통제할 수 있다고만 하지 말고 지역사회 감염에 대비해 메르스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