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환자들이 거쳐간 병원 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의 압박이 상당히 거셌으니까 정부 스스로 공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도 일리 있다.
박 시장의 대권 행보 차원이든, 서울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한 직무이든, 박 시장이 정부의 메르스 확산 차단 조치의 물꼬를 돌린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박 시장은 지난 4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 의사가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상태에서 1500여명이 모인 대규모 행사에 참석하는 등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다 격리 조처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런 엄중한 상태에서 수동감시 수준의 미온적 조처로는 서울시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다고 판단해 직접 적극적으로 대응책 마련에 나서겠다”며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을 비판했다.
그러자 다음날인 지난 5일 아침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박 시장의 어젯밤 발표를 둘러싸고 관계된 사람들의 말이 다르다. 그래서 불안감과 혼란이 커지는 상황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수석은 “아울러 서울시나 복지부가 이런 심각한 사태에 관해 긴밀히 협조해서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 불안감이나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신중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박 시장을 완곡한 어조로 비판했다.
김성우 수석의 발표 이후 새누리당에서도 박 시장을 비판하는 발언들이 잇따랐고 확진 삼성병원 의사도 박 시장자의 대권 행보라는 요지의 언론 인터뷰를 했다.
물론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5일 “청와대가 박원순시장만큼만 하라”고 박 시장을 옹호했다.
박 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기관이 독자적으로 메르스를 해결하려 할 경우 혼란을 초래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박원순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박 시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5일 메르스 대책회의에선 “해당 병원에 대해서도 관련 정보 공개를 강력 요청하고, 거부될 경우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처를 취할 것”이라며 정부와 삼성병원의 메르스 정보 공개를 압박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6일 오전 주재한 서울시 메르스 대책회의에서 “격리로 생계가 어려운 분들의 경우 긴급생계비를 지원할 것”이라면서 “지금은 누구 탓을 할 때가 아니고, 국민을 위해 합심하고 협력해 위기를 극복할 때로 시민 불안과 고통을 대신해서 시민 안위를 지켜나가는 것이 공직자의 임무이며 책임”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중앙정부가 제기한 ‘서울시 혼란 가중론’에 대해서도 에둘러 비판한 것이자 삼성병원의 정보 공개를 압박한 것이다.
그는 청와대와 여당의 국민 불안 조성론에 대해 “뒷북, 늑장 대응보다는 과잉 대응이 낫다”며 정면으로 반박하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하루 뒤인 지난 7일 정부와 삼성병원이 손을 들었다.
최경환 부총리와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병원 명단 24곳을 공개하면서 ”병원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불가피하며 확진 환자가 나온 병원 명단 등의 정보를 국민안전 확보 차원에서 공개한다“고 밝혔다.
문 장관은 이날 오후 박원순 시장과 남경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과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협력을 다짐했다.
삼성병원 송재훈 원장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서울병원에서 14번째 환자에게 노출된 환자와 의료진 등에서 감염자가 발생했다”고 사과했다.
박 시장은 정부가, 청와대가 메르스 ‘광풍’에도 제역할을 하지 못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공개 여론 조성에 정부가 비공개 원칙을 선회한 것이다. 박 시장이 정부의 메르스 대처 방향 전환을 유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메르스 환자가 급증하고 국민의 불안, 정부 불신이 광범위하게 확산된데 따른 정부의 고육지책이었다고 할지라도 박 시장이 그 불을 지핀 것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국가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지적을 받는 와중에 박원순 시장만이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상당하다.
서울시민 55%가 박원순 시장의 메르스 기자회견이 적절했다고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