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까지만 해도 동결이 유력했지만 산업생산 등의 4월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저조하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변수까지 가세하면서 이달 금리 향방을 예측하기가 한결 복잡해졌다.
현재로서는 동결 쪽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지만 메르스 파동 이후 금리인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 메르스 변수
메르스 파동으로 당장 소비 위축 등의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달 기준금리 결정에 주요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거시경제 실장은 “정부가 메르스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의학계에서 말하는 메르스의 특성을 감안하면 메르스로 인한 불안은 단기간에 진정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달 통화정책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변수가 되려면 광범위한 확산과 장기화의 두 요소가 중요한데 메르스의 특성을 감안할 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커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몰론 바이러스 변종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경기를 위축 시킬 만큼 경제가 타격을 받는 상황이라면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실제 경기부양 효과는 기대만큼 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금리인하의 실익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 금리인하 주장의 논리
이달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쪽의 논리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한가지는 통계청 등이 발표한 4월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저조한 점이다. 경기흐름이 꺾이면서 예상 경로를 벗어나는 신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엔저와 원화 강세로 수출이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부진하다는 점도 금리인하 주장의 근거가 된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이 활기를 띠고, 3월 소비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경기회복 기대감을 높였지만 저조한 수출이 이를 상쇄하면서 회복세가 꺾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경기 부양과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금리를 추가로 내려야 한다는 것이 인하 측의 논리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경제가 예상경로를 벗어나면 금리를 추가 인하할 수 있음을 시사해왔다.
최근의 메르스 파동은 이런 인하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시장에서는 오는 9월 미국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금리를 내린다면 이번달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이달 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다 지난 3월 기준금리 인하 이후 당초 우려와는 달리 외국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되고 있는 점도 금리인하 여지를 높여준다.
그동안 자본유출 위험은 가계부채 문제와 함께 금리인하 주장을 경계하는 핵심 논리가 돼왔다. 그러나 사상 첫 1%대 기준금리에도 불구하고 외국자본은 오히려 유입되고 있다. 적어도 자본유출 측면에서만 보면 금리를 더 내릴 여지가 있는 셈이다.
◇ 동결 전망의 배경
4월 경제지표는 부진했지만 5월에는 내수를 중심으로 호전됐을 가능성이 크다.
5월 지표가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무엇보다 지난달에는 어린이날 징검다리 연휴와, 석탄일 연휴로 소비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한은이 발표한 5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 수출부진의 영향으로 제조업BSI는 수치상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수출과 무관한 부동산임대업(74→76) , 예술·스포츠·여가(76→80) 등은 지수가 상승하는 등 내수, 소비 분야는 괜찮았다..
한은 관계자도 "수출부진으로 지난달 BSI가 지수로는 좋지 않게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연장선상에서 산업활동동향 등 5월 경제지표가 생각보다 좋게 나올 수 있다.
5월 지표가 호전되고, 6월에도 이 기조가 이어진다면 2분기 성장률 전망치 1%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한은은 보고 있다. 이처럼 경기 흐름이 당초 한은의 예상 경로 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금리를 내릴 이유는 없다.
또한 미국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점도 동결에 힘을 실어준다.
최근 EU와 미국의 장기금리가 급등하고 있고, 중국의 주가도 지난주 하루 변동폭이 평균 3.9%에 이르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서 섣불리 금리를 내리기에는 부담이 된다.
기준금리인하를 제약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금리를 내려도 경기부양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이다.
임희정 실장은 "지금은 기준금리를 내려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추경 편성 등 재정의 역할이 병행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 저금리의 문제
가계부채 문제를 비롯해 초저금리에 따른 부작용도 금리인하를 제약하는 주요 요소다.
정부나 한은은 가계부채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아직은 관리 가능한 범위에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외부 충격이 예상보다 강하게 가해질 경우 감당할 수 있는 범위와 능력에 대해서도 또 다른 차원에서 고려돼야 한다.
가계부채가 지금처럼 빠르게 늘어나 이른바 정부나 한은이 말하는 관리가능한 범위의 밈계점에 가까워진다면 외부충격에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금융위기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통화정책이 8년만에 대전환을 맞게 되고, 그에 따른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대응력을 충분히 갖춰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또한 초저금리에 힘입어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도 실물경기 회복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자산버블(거품)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 된다. 외환위기와 글로벌금융위기 등 과거의 뼈아픈 경험은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여기에 경제주체들이 저금리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향후 금리가 오르게 되면 한계 가구의 대규모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대규모 극빈층을 양산할 수 있다.
지금도 과도한 계층간 소득격차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비효율 문제도 심각해 질 수 있다는 것이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 측의 주장이다.
임박한 금리 인상기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하고, 기준금리 인하에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것도 그 중 하나로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