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는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벌어진 단편적인 갈등으로 보이지만, 유승민 원내대표의 당선으로 비박계(비박근혜계) 지도부 체제가 본격화된 이래 서서히 쌓여 왔던 갈등이 터져 나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장우 의원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거듭 주장했다. 유 원내대표에 대한 날을 세워 들었던 김태호·이정현 의원 역시 3일 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굽히지 않았다.
이는 청와대가 비박계 지도부에 대해 불편한 심중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기조나 정책과 결을 달리하는 목소리를 서슴지 않았던 유승민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 결과란 것이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4월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기조인 '증세없는 복지'를 '허구'로 규정했다. 여야가 '중부담 중복지'를 목표로 증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청와대의 의중과 다른 대책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김무성 대표가 '증세없는 복지'는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고 말함으로서 불거진 정치권의 '증세론'에 대해 "경제활성화 노력부터 해달라"며 비판한 적도 있다.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두고 친박계 의원들이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유 원내대표를 두고 당내외에서 "자기정치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나오며 당청갈등 양상을 보였다.
앞서 유 원내대표가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던 사드(THAAD)문제도 당청관계의 암초가 됐다.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상황이었지만 원내지도부는 국방에 있어 당의 역할을 강조하며 의총을 여는 등 공론화했다. 비박계 지도부와 청와대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며 불협화음이 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최근 여야가 합의해 본회의를 통과한 공무원연금법 협상 과정에서도 당청갈등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지난달 2일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해 여야는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는 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즉각 "월권"이라며 반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에 대해 "2천만명 이상이 가입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등의 제도 변경은 그 자체가 국민께 큰 부담을 지우는 문제"라고 문제삼았다.
논란 끝에 여야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분리처리하며 사실상 청와대의 의견을 반영했다.
이렇듯 비박계 지도부 출범 이후 청와대와의 소통이 계속 껄끄러운 과정에서 국회법 개정안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자 갈등이 임계치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내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유 원내대표에게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협상의 결과가 늘 청와대 갈등으로, 당청 간의 갈등으로 비쳐지고 있다"면서 "공무원연금도 그랬고 지금 시행령도 마찬가지다"고 주장했다.
또 "개인적인 소신인지 모르겠지만 정세문제, 사드문제, 모든 것이 갈등으로 비쳐지고 있다"며 "저는 원내대표 자리는 개인의 자리가 아니라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라고 본다. 앞으로 이런 부분들을 유승민 원내대표께서 한 번 더 깊이 있게 새겨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국회와 여당을 국정의 파트너가 아닌 '거수기'로 생각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비판도 적지않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청와대가 입법권을 가진 국회를 존중하지 않는다"면서 "그간 의회가 그저 거수기 노릇을 하던 행정부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서로를 견제하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져 해결도 요원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이상이나 남은데다 친박계가 조직적 반발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어 당 지도부가 재협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