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공개 거부'에 숨겨진 '의료인 짝사랑'

[국가방역체계 긴급 점검③]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와 3차 감염자 속출로 관련 병원을 공개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근거없는 걱정일 뿐"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인의 안전은 위험하다며 격리자 정보 일체를 공개하기로 해, 당국 스스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2일 의료인들이 감염 걱정 없이 격리대상인 환자나 병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확진 환자 조회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의료진이 보건소를 통해 해당 환자와 앞서 이용했던 병원의 격리대상 지정 여부를 파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민관합동대책반에 참여한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은 "국민 우려는 알고 있는데 사실 제일 위험한 사람은 의료진"이라며 "동료나 응급실, 외래, 주변의 다른 분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일반 시민에겐 지금까지처럼 격리대상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병원 명단 공개 요구에 대해 "고민의 많은 부분들이 근거가 없다"며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었더라도 그것 때문에 병원을 가면 안 된다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고 선을 그었다.

의료진이나 보건소 직원은 비교적 쉽게 추적·처벌할 수 있어서 정보 유출의 우려도 적다는 게 보건당국의 설명이다.

아울러 메르스 발생 병원을 일반 시민에게 알렸다가 '진료 기피 현상'이 일어날 경우 벌어질 경제적 피해를 정부가 감당하기 두렵다는 속내도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메르스로 인해 사망자와 3차 감염자까지 발생한 만큼, 시민들은 병원 명단이라도 알려달라며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생 정진학(20)씨는 "학교 가는 길에 지하철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불안하다"며 "시민들도 알 권리가 있는데, 병원 목록은 공개해야 자기 건강을 위해 대책을 세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주부 기은옥(53)씨도 "어차피 어느 병원이 문 닫았다, 어느 병원에서 많이 옮았으니 가지 말라는 내용의 글이 휴대전화 메신저로 돌고 있다"며 "병원 목록을 공개해야 그 병원에 갔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아 더 번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의료전문가들 역시 정부가 현 시점에선 지역전파 가능성을 인정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게, 공익과 실리 모두에 부합한다고 강조한다.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은 "3차 감염이 시작된 상황에서 확산은 시간문제"라며 "더 큰 재앙이 오기 전에 해당 지역에 있는 분들이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원의 경제적 피해 우려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 오히려 시민들의 불안과 혼란을 피할 수 있다"며 "병원 정보가 알려져도 정부가 보상하겠다고 약속하면 적극적 진료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령 여의도성모병원이 지난달 31일 "메르스 확진 판정은 내렸지만 ICU(중환자실)이 폐쇄됐다는 유언비어와 달리 정상 운영중"이라고 '커밍아웃'한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

왜곡된 정보로 입는 피해가 정보 공개에 따른 피해보다 훨씬 크고 심각하다는 점은 병원들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일이 환자의 병력을 조회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정부의 '고집'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많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변혜진 기획실장은 "보건소에서 수많은 의사들의 확인 요청에 재빠르게 답할 수 있을지, 실제로 의사들이 일일이 확인할지 전혀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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