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년째 0%2525대 물가…디플레이션이냐 아니냐
통계청이 2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인 지난해 5월과 비교해 0.5% 상승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0%대 저물가 행진이 6달째 지속되고 있다.
또 담뱃값 인상요인(0.58%p)을 제외하면 사실상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인 달도 지난달을 포함해 넉달째다. 실제로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 5월과 비교하면 0.4% 하락했다.
이같은 저물가 현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석유류 가격이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휘발유와 경유, LPG 등 석유류 가격이 크게 내려가면서, 이것이 물가를 1%p 이상 끌어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석유류와 농산물을 뺀 근원물가는 여전히 2%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도 2.1%를 기록했다. 게다가 농산물 물가도 전년동월대비로 2.7% 상승해 서서히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이런 까닭에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석유류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이하로 본격 하락하기 시작한 점을 들어, 올해 하반기에 접어들면 석유류 가격이 물가를 끌어내리는 기저효과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소비자 물가는 하반기로 갈수록 상방요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다.
◇ 서서히 드러나는 디플레이션의 징후
이는 저물가 상황이 저유가라는 공급측면에 기인한 것이라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연세대 성태윤 교수(경제학)는 현재 상황은 전형적인 저물가 상황과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성 교수는 "온전히 공급측면에 의한 저물가라고 하면, 낮은 물가로 인해 생산이 증가해야 하고 저물가 상황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저유가의 혜택을 받아 생산 원가가 낮아지면 생산이 늘어나고, 또 가계소득이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해 가계 소비가 늘어나야 하는데 그런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0%대 물가가 반년 동안 지속되는 것도 결국은 공급 측면 뿐 아니라 수요 부진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성 교수는 "이미 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냉정하게 상황을 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유류 가격 하락에 따른 기저효과가 사라지는 하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기대인플레이션율(2.5%) 이상의 물가상승이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수요부진에 의한 저물가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D의 공포…힘 얻는 금리인하론
그러나 하반기 이후에 디플레이션 대응에 나서면 대처가 너무 늦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저물가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이제는 경기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해지고 있다. 수출이 부진한데 이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들어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는, 이른바 불황형 흑자가 발생하고 있는 점도 경제에는 큰 부담이다.
이에따라 통화정책을 통한 물가관리 책임을 지고 있는 한국은행의 역할, 특히 금리인하에 대한 압박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시중에 돈을 더 풀어 돈값을 낮추고 반대로 물가를 올리는 전형적인 통화정책이다.
금리인하 문제는 지난달 2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상반기 경제전망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KDI는 금년 중 1~2회의 금리인하를 전제로, 올해와 내년에 3%내외의 경제성장을 예상했다. 즉 거꾸로 말하면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없으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KDI 김성태 연구위원은 "지금 현재 우리 물가안정 목표가 2.5~3.5% 사이인데, 지난 3년 동안 실제 물가는 목표에 1%p 못미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가계부채에 대한 대응을 전제로) 통화정책은 보다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26일 "KDI와 생각이 비슷하다. 한은이 충분히 참고하지 않겠느냐"며 금리인하를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이에따라 한국은행이 조만간 금리를 한차례 더 인하할지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외통수에 빠진 한국 경제…돌파구는?
문제는 금리 인하 문제는 가계부채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이미 한차례 금리를 인하하면서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추가적인 금리인하는 가계부채 문제를 한계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부진과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 그리고 저물가에 따른 디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가계부채 문제로 섣불리 금리 인하를 할 수 없는 상황. 외통수에 빠진 상황에서 돌파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대한민국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