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미군이 탄저균을 비롯해 위험 물질을 국내에 들여오더라도 구조적으로 우리 정부가 알 수 없도록 한 주둔군지위협정, 즉 소파(SOFA)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스티브 워런 미 국방부 대변인은 현지시각으로 27일 성명을 통해 "유타주의 군 연구소에서 부주의로 살아있는 탄저균 샘플이 캘리포니아와 메릴랜드 등 9개 주로 옮겨졌다"고 발표했다.
워런 대변인은 "탄저균 샘플 1개는 한국 오산에 위치한 주한미군의 합동위협인식연구소(ITRP)로 보내졌다"며 "현재까지 일반인에 대한 위험 요인은 발생하지 않았고 발송된 표본은 규정에 따라 파기됐다"고 밝혔다.
이에 주한미군사령부는 28일 보도자료를 내고 "51전투 비행단 긴급대응요원들은 배달된 박테리아균이 비활성화 훈련용 샘플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후에 오산공군기지에 있는 응급격리시설에서 탄저균 샘플을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미군은 또 탄저균 샘플 폐기 등에 참여한 미군 요원 22명에 대해 의료 예방조치를 취했고 감염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비록 실수라고 하더라도 인체에 치명적인 병원균으로 생물학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탄저균이 한국땅에 들어왔지만, 우리 정부 당국은 이 사실을 미군이 통보하기 전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데 있다.
탄저균을 살아있는 상태로 이동시킬 경우 군사용이든 실험용이든 그 용도와 관계없이 국제적 협약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에 신고하고 규정된 용기에 담아 이동시켜야 한다. 또, 타국으로 이동할 경우에는 해당국 질병관리본부에 이를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 당국은 미군이 27일 배송된 탄저균이 살아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폐기한 뒤 관련 사실을 통보하기 전까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측으로부터 관련 정보는 받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가 있는지는 확인을 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비록 실수이긴 하지만 이처럼 살아있는 탄저균이 아무런 제지 없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미군의 물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검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상 미군 물자의 경우 일반적인 우리 통관 당국이나 방역 당국의 심사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송기 등을 통해 바로 해당 부대로 전달된다. 이번에 배송된 탄저균 샘플 역시 미군 수송기를 통해 미국에서 오산공군기지로 바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오산공군기지에도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배치돼 있지만, 신분확인 등을 거칠 뿐 소지품이나 물자에 대해 엄격하게 검역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한·미간 맺은 주둔군지위협정인 소파협정에 따른 것으로 주한미군은 한국 내에 들여오는 물자에 대해 일일이 우리 정부 당국에 신고할 의무가 없다.
소파협정 9조에는 '합중국 군대에 탁송된 군사화물' 등에 대해서는 세관 검사를 하지 않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말해 위험물질이라 할지라도 미군 측이 이를 숨기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경우는 실수로 인정하더라도 향후 미국이 한반도 기후조건 등에 맞춰 탄저균을 실험하기 위해 살아있는 탄저균을 비밀리에 국내에 들여오기로 마음먹을 경우에는 속수무책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미군문제연구위원장 하주희 변호사는 "탄저균 같은 위험물질 등이 얼마나 많이 주한미군기지로 들어오고 나가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는 반드시 사전에 통보하도록 SOFA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 관계자는 "미국 국방부 역시 27일에 뒤늦게 배송된 탄저균 샘플이 비활성화된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주한미군에 폐기를 지시한 것"이라며 "미군이 비밀리에 탄저균을 들여올 목적이었다면 관련 사실을 왜 공개했겠냐"라고 이같은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28일 오후에 우리 질병관리본부 측이 미군 오산공군기지에 들어가 탄저균 반입경로와 폐기처분 여부 등을 확인했다"며 "조사를 마치면 결과를 구체적으로 공개할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