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개봉한 이 영화에는 연출과 주연을 맡은 박정범(40) 감독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영화 산다에 박 감독의 실제 아버지인 박영덕 씨가 출연한 것은 그 단적인 증거다.
감독의 전작 '무산일기'(2011)에서도 탈북자를 돕는 박형사로 분했던 아버지 박 씨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먹이 사슬'의 윗쪽에 위치한 된장공장 강사장을 연기했다. 극의 주요 무대가 되는 된장 공장 역시 박 씨가 실제로 운영하는 곳을 촬영지로 빌린 것이다.
최근 서울 상수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강원도 평창으로 가셔서 된장 공장을 하고 계신다"고 전했다.
'아버지의 지원을 어떻게 얻어냈냐'는 물음에 그는 "가족이니까"라고 답하며 웃었다.
"저 역시 나중에 생길 제 자식이 하자고 하면 할 겁니다. (웃음) 아버지는 일만 해 오신 분이셔서 평소 영화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어요.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 평생 몸을 쓰는 노동자로 살아오셨으니까요."
그는 "아버지와의 작업이 신기하면서도 재밌다"고 했다.
"영화든 사진이든 이미지는 기록으로 남는 법이잖아요. 아들과 뭔가 이상한 걸 했는데 영화관에도 걸리고, 언제든 볼 수 있으니…. 아버지와 제 시간이 기록으로 영화 안에 있습니다. 평생에 다시 없을 추억이죠."
"중·고등학교 때 가난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꼈죠. 부모님이 나쁜 사람도 아닌데 가난은 항상 존재했으니까요. 그때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계속 가고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요"라는 말이 유행했을 만큼, 한국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는 극심한 세대 갈등의 표본으로 여겨진다. 그 갈등의 주요 원인에는 대물림 되는 가난이 큰 몫을 하는 분위기다.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만들어 온 박 감독의 모습은 이러한 갈등을 넘어선 무엇인가를 품고 있는 듯하다. '극복한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극복이 아닌 이해"라는 표현을 썼다.
"아버지가 저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이해죠. 제가 볼 때 60, 70년대를 견뎌내신 분들의 내성은 상상할 수 없는 겁니다. 근대화 이후 한국이라는 사회를 겪으신 분들의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그러한 아버지께 '왜 돈 못 버냐' '무능하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죠."
박 감독은 "아버지를 이해하니 존경하게 됐다"는 말로 답변을 이어갔다.
"중·고등학생 때는 엄청 반항하고 가출도 하고 부모님께 불효를 많이 했어요.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랬기 때문에 이해와 존경의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아버지가 40대 초중반이셨으니 지금 제 나이대죠. 현재의 저는 그때 아버지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효도해야 한다'라고 분명하게 느끼는 거겠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