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6-1로 앞선 9회 1사에서 강경학이 2루 도루를 감행했습니다. 케이티 내야진은 이에 조금도 대비하지 않았던 터였습니다. 한화는 9회말 수비 때는 투수를 두 번 교체했습니다. 박정진이 선두 타자 장성호를 1루 땅볼로 잡아 2⅓이닝을 마친 뒤 김민우가 바통을 이어받았고, 2사에서 다시 윤규진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승부는 그대로 6-1로 끝났고, 경기 후 두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온 상황에서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케이티 주장 신명철이 9회 상황에 대해 한화 선수단에 강하게 불만을 표출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다행히 별다른 물리적 충돌 없이 상황이 종료됐지만 감정의 앙금은 남았습니다.
케이티로서는 한화가 이른바 '불문율'을 어긴 게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사실상 승부가 갈린 경기 후반에는 이기는 팀은 도루나 투수 교체로 상대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경기 후 케이티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한화가) 조금 매너없는 플레이를 한 것으로 봤다고 한다"면서 "강경학의 도루 때는 경기가 (거의) 넘어간 상황이었고 우리는 태그업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9회말 투수 교체도 타이밍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봐 주장인 신명철이 선수 간에 항의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불문율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경우가 생깁니다. 불문율이냐, 불륜이냐. 그 경계가 갈수록 애매모호해지고 있는 겁니다.
시간을 좀 돌려볼까요? 지난달 12일에도 한화는 불문율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때는 입장이 달랐습니다. 사직 롯데와 원정에서 한화는 큰 점수 차로 뒤진 상황에서 나온 상대 잇딴 도루에 발끈했습니다. 때문에 12일 경기에서 잇따라 고의적으로 상대 타자를 맞혀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대치 상황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한화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의 도루가 자극이 됐습니다.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10일 1차전에서 롯데는 8-2로 앞선 6회말 황재균이 2루타를 친 뒤 3루 도루를 감행했고, 경기 후 롯데 최준석과 한화 김태균, 양 팀 주장이 경기 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12일 황재균은 7-0으로 앞선 1회 도루를 시도했고, 이후 4, 5회 잇따라 한화 투수의 공에 맞았습니다.
지난달 사직 경기와 이번 수원 경기를 비교하면 '6회 6점 차-1회 7점 차'와 '9회 5점 차'가 됩니다. 한화가 두 경기 모두 당사자인 만큼 비교하기도 비교적 어렵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일단 한화 입장에서는 6회 6점 차와 1회 7점 차 도루는 안 되고, 9회 5점 차는 된다는 게 성립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케이티로서는 9회 5점 차는 안 된다는 입장일 겁니다. 그 때문에 신명철이 경기 후 그처럼 흥분하며 불만을 제기했을 겁니다. 상황과 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불문율, 그 괴리감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지난달 21일 LG와 잠실 원정에서 한화는 0-10으로 뒤진 9회초 공격에서 상대 투수가 바뀌었습니다. 9회 새로 투입된 유원상에 이어 2사 후 이동현이 나왔습니다. 유원상은 4일, 이동현은 5일 만의 등판으로 컨디션 점검 차원이었습니다. 투수 교체의 불문율도 각 팀마다 다르다는 겁니다.
사실 부상에서 복귀하는 등 오랜만의 등판하는 투수는 지는 경기에서 나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관례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겁니다. 지고 있는 팀을 자극할 수 있다는 위험에도 이런 경기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사실 지난해 가을야구 때도 이런 투수 교체가 더러 눈에 띄기도 했지만 큰 탈은 없었습니다.
최근 야구의 추세가 불문율을 담보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게 큽니다. 1982년 출범 뒤 최악의 타고투저 시즌이 벌어진 지난해 는 10점, 20점 핸드볼 스코어가 속출했습니다. 블론세이브가 역대 최다인 145개, 팀당 16개가 넘었습니다. 그만큼 경기 후반 뒤집어지는 사례가 많아진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경기 중후반 비교적 넉넉한 점수 차에도 안심할 수 있는 팀이 드뭅니다. 도루와 번트가 나오고 투수 교체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한 베테랑 해설위원은 "사실 불문율이라는 것은 메이저리그에서 시작된 것인데 이를 우리 야구에 걸맞게 바꾸고 해석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p.s-지난해 소치올림픽 기간 썼던 '소치 레터' 후기로 쇼트트랙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3월 출고된 레터의 제목이 '쇼트트랙, 로맨스와 불륜의 아슬아슬한 경계'였습니다.
쇼트트랙은 스피드 경쟁 종목이지만 기록보다 순위가 중요한 터라 협력 플레이가 중요합니다. 같은 팀 선수끼리 다른 팀 선수의 침투를 막는 게 승부의 관건 중 하나인데 이게 또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겁니다. 국내 선발전에서는 이른바 '짬짜미' 사건으로 비난받은 이 전략은 국제대회에서는 훌륭한 팀 플레이로 찬사를 받습니다.
야구의 불문율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이번 레터를 띄우다 보니 문득 지난해 기사를 쓰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야구에서 로맨스와 불륜의 경계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