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차고 '흥정'…영진위, 국제영화제 예산 '졸속' 배분

'2015 글로벌국제영화제 육성지원 사업 예비심사 회의록' 입수…"공정·객관성 실종"

부산국제영화제 전경(자료사진/노컷뉴스)
올해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 예산 35억 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김세훈)가 졸속 심사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원 예산이 반토막나다시피 한 부산국제영화제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반발이 큰 와중에, 예산 지원 심사가 공정성, 객관성을 잃었다는 점이 불거지면서 영진위 측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2015 글로벌국제영화제 육성지원 사업 예비심사 회의록'에 따르면, 영진위는 지난달 17일 서울 충무로 미디어센터 KOFIC 라운지에서 심사위원 5명, 영진위 측 진행자 1명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 국제영화제에 대한 예산 배분 심사를 벌였다.

이날 심사는 기존에 지원하던 7개 영화제를 비롯해 신규 신청한 2개 영화제까지 모두 9개 국제영화제를 두고 진행됐다. 문제는 35억 원의 예산 배분 심사에 대한 신뢰도가 몹시 떨어진다는 데 있다. 특별한 기준 없이 "여기는 얼마, 저기는 얼마"라는 식으로, 완장을 차고 선심 쓰듯이 돈을 나눈다는 인상을 주는 탓이다.

회의록을 보면 영진위 측은 이미 "지원액은 각 영화제별 전체 예산의 25%를 넘지 않을 것(쉬운 예로 한 영화제의 전체 예산이 1억 원이라면 지원액은 2500만 원을 넘지 못함)" "영화제별로 너무 집중돼 있는 것을 풀어주자"라는 기준을 심사위원들에게 제시했고, 이에 따라 위원들은 예산 짜맞추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부산은 그동안 지원금이 집중화돼 타 영화제보다 많은 혜택을 받아 왔는데, 타 영화제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7억~7억 5천 정도가 어떨까 합니다. (중략) 그리고 청소년영화제는 전액 삭감하는 것으로 했으면 좋을 것 같고, 제천은 3억 정도, 그리고 DMZ는 지금 보니까 예산이, 사업비가 20억 정도 되기 때문에 2억 5천~3억 정도. 그러면 총액이 32억 정도 되네요."

"DMZ 같은 경우에는 1억 5천 정도, 지난번에 5천이었는데 2억 5천은 갑자기 확 뛰는 것 같아서, 1억 5천 정도로 생각했어요."

"청소년영화제는 넣지 않는 것으로 하면, 그래서 제 계산으로 하면 34억 2천인데요. 저는 굳이 부천을 올려줄 필요가 없을 듯해요. 비슷하니까."

"저는 부산영화제에 대해서는 7억 5천을 제안합니다." "그럼 7억 3천은 어떨지?" "지금 우리가 TV 사느라고 흥정하는 그런 게 아니고, 딱 스팩이 정해진 상태도 아니고 다들 의견을 말씀하시는 건데…"

"전주가 부산보다 많아지는데 영화제들의 예산 규모와 위상에 대한 고려를 좀 더 해 주시면 어떨까요." "그럼 부산을 7억5천으로 하고 전주를 7억으로 하면 어떨까요." "그럼 부산 7억5천, 전주 7억, 부천 6억, 여성 3억5천, 제천 3억5천, 제천 3억5천, DMZ 1억. 총 28억5천으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지원 예산 결정심사 9인 위원회 회의록 비공개 등 감추는 것 너무 많아"

이러한 회의록 내용에 대해 해당 영화제들은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됐다는 점에서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우리 역시 예비심사 회의록을 열람한 뒤 지난 12일 영진위 측에 납득할 만한 답을 달라고 공개 질의를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이전에 받았던 심사 결과 통보와 다를 바 없었다"며 "회의록을 봤을 때 예산 삭감에 대한 정확한 근거가 없고, 부산영화제에 대한 지원 축소가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회의가 진행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정심사를 한 9인 위원회의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는 데 더 큰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영화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외적으로 이러한 일이 불거지면서 내부적으로 준비하는 데도 몹시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측은 "우리에게 회의록을 공개할 당시 영진위 측은 촬영은 물론 메모도 못하게 했는데, 공공기관정보공개법(13조 2항)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청구인이 사본 또는 복제물의 교부를 원하는 경우에는 교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국회에서 올 초 영진위에 회의록을 요구했을 때도 '작성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이제서야 회의록이 나온 것을 보면 감추는 게 너무 많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영진위 측은 "기존에 나갔던 보도자료 등으로도 밝혔듯이 정해진 절차와 기준에 따라 심사를 진행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결정 심사를 한 9인 위원회 회의록이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안건을 신속하게 결정해야 했던 상황에서 회의가 아닌 서면의결로 진행해 회의록이 남아 있지 않다"며 "매년 영진위 홈페이지 경영공시에 회의록을 올려 왔지만, 올해는 서면의결로 진행함으로써 결과만 공시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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