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는 5월 8일부터 7월 5일까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에서 열리며 개막 행사는 5월 22일 진행된다.
앞서 을사늑약을 강요당한 날이자 우당 이회영의 기일인 11월 17일부터 진행되어 2015년 3.1절에 막을 내린 서울 전시는 1만여명의 관객이 찾아와 뜻을 기렸다.
우당 이회영은 독립 운동 초기 신민회 핵심으로 활동하며 헤이그 밀사파견을 기획한 인물이다.
조선조 이항복 이래 10명의 정승을 배출한 대표 명문가로서의 자손이자 거부(巨富)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자 6형제와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6백억 원의 재산을 처분해 서간도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회영과 6형제가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무려 3,500여명의 독립군을 양성하고 청산리 대첩 등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항일무장운동의 토대를 만들었다.
해방된 조국땅을 밟은 것은 6형제 5남 성재 이시영 (초대 부통령)이 유일하다.
이회영은 1932년 11월 17일 뤼순감옥에서 고문 끝에 순국했으며, 둘째 이석영과 여섯째 이호영은 아사하거나 불구덩이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일제강점기 내내 굴하지 않은 이들을 일러 ‘조선 최고의 가문, 조선 최고의 부자, 조선 최고의 형제’로서 나라가 어려울 때 ‘배운 자,’ ‘벼슬한 자,’ ‘가진 자’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 귀감으로 회자된다.
전시 제목 ‘난잎으로 칼을 얻다’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묵란(墨蘭)을 치고, 그 그림을 팔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했던 우당을 추도하되 독립운동사에 난초 한 그루를 심는 심미안을 담았다.
전시에서는 우당의 묵란 5점과 벼루, 우당의 아내이자 독립운동가 이은숙의 회고록 『서간도시종기(西間島始終記)』 육필 원고 등 실물자료 30여점이 광주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우당의 묵란은 추사 김정희로부터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잇는 한국식 묵란 화풍의 한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