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살뜯기'만 강한 야당… '文의 선택' 옳았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사면초가에 처했다. 이 길로 가면 지뢰밭이요, 저 길로 가면 암벽처럼 보이는 진퇴양난의 처지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혁신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안철수 전 공동대표를 혁신위원장에 앉히려는 방침을 내비쳤으나 안 전 대표가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29재보궐 선거 전패 이후 짓누른 당내 분란이 점입가경이다.

정청래 최고위원에 대한 최고위회의 참석 금지라는 사실상의 직무정지 카드를 꺼내며 주승용 최고위원을 달랬으나 허사로 끝났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회군'할 가망이 별로 없다. 주 의원은 문재인 대표를 만난 이후 기자들에게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것 맞으며 돌아갈 일은 없다"고 18일 잘라 말했다.

광주·전남 지역 의원들은 통일된 입장을 내진 못했으나 문 대표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사퇴를 간접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잠시 수그러들 것처럼 보이던 당 내 갈등이 문 대표의 공천 지분 발표문으로 악화일로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문 대표 체제의 친노와 호남을 중심으로 한 비노 세력 간의 갈등 양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은 지난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 도중 정청래 최고위원과 공개 석상에서 언쟁을 벌이다, 문재인 대표의 만류를 뿌리치며 퇴장했다. (사진=윤창원 기자)
선거 패배 이후 일어나고 있는 당내 분란과 문 대표의 지지율 추락 등이 한데 맞물리면서 당 밖의 원심력을 배가시키고 있는 국면이다.

친노의 결속도 더 견고해지는 양상이다. 그러나 문 대표 체제를 흔드는 가장 버거운 상대는 뭐니뭐니해도 호남 민심이다.

천정배 의원이 아닐지라도 그 누군가 호남을 중심으로 한 정당을 태동시킬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한 의원은 "호남이 문재인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에 무기징역 선고를 내린 것"이라며 "호남에서 문재인 간판으로 내년 총선을 치른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도 5.18 기념식 참석차 방문한 광주에서 냉대를 받았다. 그 어떤 야당 지도자도 경험한 적이 없을 정도로 싸늘했다.

당 혁신위 출범도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출범하더라도 자칫 반쪽짜리가 될 수 있으며, 당의 단합을 외쳐본들 분열의 '자기장'은 점차 세게 흔들거릴 것이다.

호남발 문재인 비토 분위기가 결국 수도권 의원들까지 동요하게 만들 개연성이 있다.

4.29재보선 광주 서구을에서 당선된 무소속 천정배 의원 (사진=윤창원 기자)
익명을 전제로 한 정치 분석가는 "9, 10월을 넘어가면 호남을 넘어 수도권 의원들까지 흔들릴 것이고, 그때가 되면 문 대표가 제아무리 용을 써도 대표직을 유지하기 힘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문재인 대표 체제의 2016년 4월 총선 승리에 이은 2017년 12월의 대선 승리라는 선순환의 그림이 색칠은커녕, 스케치도 할 수 없다는 어두운 전망이다.

친노의 한 핵심 인사는 지난해 12월 초 "문재인 의원의 당 대표 출마와 관련해 당 내에 두 가지 기류가 있으나 문 의원이 당 대표가 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총선 승리를 하면 자연스레 대선고지까지 차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문 대표도 당시에 출마와 불출마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표는 지난 12월 '2.8전당대회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을 정도로 결정을 하지 않고 여러 의견을 들었다.

문 대표는 결국 친노 핵심 인사들의 출마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수용했다고 한다.

뚜렷한 선장이 없는 야당을 진두지휘하고 큰 정치인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2월 8일 오후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제1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 대표에 선출된 문재인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
당시에 문재인 출마론자들은 당 대표가 되어야만 박근혜 정부와 맞설 수 있고 야당 정치인으로 우뚝 솟는다는 장밋빛 전망만을 내놓았다.

정세균 의원은 지난 1월 중순 당 대표 출마를 철회할 때까지 문 대표가 불출마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 체제와 총선·대선 승리의 '선순환 고리'는 점차 깨지고 있다.

당 대표 불출마론자들은 계파 정치에 찌들고 서로 물어뜯는 당 내 인적구조로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활한다고 할지라도 당 대표를 잘하기 힘들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계파정치와 여야 대결정치에서 한 발 비켜 있다가 총선 때 선대위원장을 맡는 게 대선고지 점령에 유리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문 대표가 현재 처한 정치적 위기 상황을 보면 후자 쪽의 반론이 맞아가는 듯하다.

당내 분란의 위기를 문 대표가 초래한 측면이 있다. 김경협 의원을 사무부총장에 임명함으로써 탕평 인사를 무색하게 만들었고, 기다렸다는듯 그때부터 비노 측의 반발이 터져나왔다.

재보궐 선거를 패하면 오늘과 같은 당 내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는 예상을 미리 하고 공천에 관여를 했어야 했으나 경선에 맡겨버렸다.

관악을 토박이나 다름없는 김희철 전 의원을 0.6% 차이로 따돌린 정태호 전 후보가 친노의 핵심 인사라는 사실이 문 대표를 측근 공천이라는 사슬로 옭아맸다.

천정배 의원의 출마가 명약관화했음에도 그를 붙잡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출마에도 마냥 방관했다.

시민이 정동영 전 의원과 천정배 의원을 심판해줄 것으로 믿었으나 민심은 오히려 역공을 취했다.

정치력이 없다는 지적은 국회의원 400명 설 같은 말실수로 인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것이다. 정치 신입생 환영식이 지나쳐 야당에서 전무후무하다시피 할 정도로 진정성 있는 정치인 한 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야당 인사들 사이에서 거론된다.

새정치연합은 사람을 키우려는 모습이 아니고 서로 헐뜯어 흠집내는 데 너무 익숙한 정당구조이자 인적구성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단계를 지나, 하나만 다르면 '적'으로 내모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손학규·정세균·김한길·안철수 전 대표도, 박영선 전 원내대표도 그런 헐뜯기에 당했다.

손학규·김한길·안철수·박영선 전 대표를 친노와 486운동권 출신들이 자빠뜨렸다면 문재인 대표는 비노계가 내쫓으려 한다.

그를 전당대회로 내몬 사람들이 이제는, 어떻게 해야 '문재인 일병'을 구할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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