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1992년 징역 3년 형이 확정돼 복역했다.
문제는 검찰이다. 1991년은 명지대생 강경대 군이 시위도중 진압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한 뒤 잇따른 분신과 투신 사건의 와중에 검찰은 유서대필 사건을 들고 나왔다.
당시 전재기 서울지검장은 강기훈을 "교활한 인물"이라며 "이 사회에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고 있다, 검찰은 국가 최고 권력 집행기관의 자격으로 이런 '악마'를 응징하는 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대군 사망사건으로 노태우 정권이 위기에 처하자 공안정국 조성을 위해 검찰이 '권력의 시녀'를 자처했던 것이다.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변호사는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고검장을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했으나 지난해부터 대검찰청 사건평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무죄 판결을 받은 중요 사건에서 검사의 과오를 평가하는 역할을 맡았다.
공안몰이에 앞장섰던 검사들이 승승장구한 것이다.
문제는 검찰이 23년만에 재심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됐는데도 상고를 했다는 점이다. 검찰이 상고를 결정하는 과정은 무죄사건을 평정하는 대검찰청 사건평정위원회 위원장을 당시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변호사가 맡고 있었다는 점이다.
검찰이 밝힌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상고이유는 "법원에서 김기설씨의 필적으로 인정한 '전대협 노트'를 인정할 수 없다"는 간단한 이유였다. 지금도 강기훈씨의 유서대필을 확신한다는 얘기다.
당시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판결이 확정되고 나서 20년이 지난 뒤 제출된 전대협 노트의 글씨를 김기설씨 글씨라고 인정한 법원의 판단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상고를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년 만에 전대협노트가 밑도 끝도 없이 제출됐는데 이것이 김기설씨 것이라는 김 씨의 여자 친구 말을 믿기 어렵다"는 게 상고의 이유라고 덧붙였다.
상고를 결정한 서울고검 조희진 차장(검사장)은 "과거 대법원 판결에서도 유죄 증거로 채택됐던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재심 재판부가 배척하면서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검찰의 입장을 밝혔다.
첫 번째는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당시 수사 관계자들이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서 현직으로 활동하거나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 당시의 수사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고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또 강기훈씨가 간암으로 투병 중인데 항소심이 있기 얼마 전 암이 재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기 위해 상고를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상고심이 1년 3개월만에 강기훈씨가 생존시에 이뤄져 다행이지 상고심이 늦어졌다면 사후에 판결이 났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시간끌기의 이유 중 하나는 이미 23년 전의 사건이지만 자신이 근무할 때 확정판결이 날 경우 잘나가는 선배검사들이 한 일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하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검찰내부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나 검찰 고위관계자들은 아직도 강기훈 유서 대필사건을 유죄라고 확신한다.
지난해 항소심에서 무죄선고가 선고됐을 당시 검찰내부의 의견을 들어보니 "당연히 상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고 수사에 관여하거나 같은 부에 근무했던 전직 검찰관계자들도 "당시로서는 유죄가 아닌 것이 이상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재심사건에서 검찰은 기계적으로 항소나 상고를 거듭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공안부는 위헌 결정이 난 사건을 제외하고는 증거부족 등으로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지면 무조건 항고, 재항고를 하고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 상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바로서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과거의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해왔다. 따라서 무죄가 확정된 사건에 대해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과거를 바로잡아야 한다.
◇ CBS노컷뉴스 기획 '대필 공방 20년, 유서는 말한다' 다시보기
☞1편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2편 '필적감정'
☞3편 '정의란 무엇인가'
☞4편 '유서대필 사건 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