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CBS FM 98.1 (06:00~07:00)
■ 방송일 : 2015년 5월 14일 (목) 오전 6:38-47(9분간)
■ 진 행 : 김덕기 앵커
■ 출 연 : 변이철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장)
▶ 오늘 검색어 트렌드...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오셨나요?
= 예 오늘은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잔혹동시 논란’의 이면을 한 번 살펴보고자합니다.
논란을 일으킨 시는 한 초등학생이 쓴 ‘솔로강아지’라는 시집에 나오는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작품입니다.
내용을 보면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이렇게/엄마를 씹어 먹어/삶아 먹고 구워 먹어” 이런 잔혹한 구절이 나와 거센 비판이 일었습니다.
▶ 잔혹 동시... 정말 ‘인기 검색어’에 한동안 계속 오르면서 논란이 뜨거웠는데 이 시집은 결국 다 폐기가 됐나요?
= 그렇습니다. ‘잔혹동시’ 논란을 빚었던 동시집 ‘솔로강아지’가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지처리장에서 전량 폐기됐습니다. 책이 출판된지 40여 일만인데요.
솔로강아지는 초판 2000부가 인쇄됐는데요. 출판사측은 이 중 이미 판매된 700여권과 이양이 소장한 책, 일부 지방에 배포된 후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것을 제외한 439권을 모두 파쇄했다고 밝혔습니다. 전량 파쇄에 걸린 시간은 고작 3분이라고 하는군요.
학부모 단체들 중 일부가 ‘시집을 불태우라’고 요구했지만 출판사 측은 파쇄를 선택했는데요.
이양의 부모는 당초 “서점에 배포된 시집을 회수할 수는 있지만 폐기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폐기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 “이건 사탄의 영이 지배하는 책”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자 이 양은 부모는 “더 이상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전량 폐기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 이 어린이 시인은 필리핀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의 열성팬입니다. 제가 어제 저녁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전화통화를 했는데 복싱학원에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아주 밝고 씩씩했습니다. ‘시집이 모두 폐기돼서 서운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면서 “언젠가는 ‘학원가기 싫은 날’이란 시가 다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또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에는 “시는 시일뿐인데 진짜라고 받아들인 어른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또 악플이 이 양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준 것으로 보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악플”이라면서 “내가 좋아하는 복싱이나 공기놀이처럼 재밌는 일을 하면서 잊어나가겠다”고 했습니다.
▶ 열 살 나이에 시 한 편으로 홍역을 치렀는데... 시는 앞으로 계속 쓰겠다고 하던가요?
= 예, 이 양은 “앞으로 시를 계속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양이 ‘절필 선언’을 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건 그냥 화가 나서 해본 말”이라고 하더군요.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냐’는 물음에는 “동심이 있는 시나 동심이 없는 시나 다양하게 쓸 생각”이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마음이 조금 무거웠는데요. 특히 아이의 창작활동에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작품에 담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동심이 있는 시’와 ‘동심이 없는 시’로 구분하면서 남을 의식하고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양은 언론에서는 “내 시가 나쁘다는 말도 많이 했는데 제 시를 응원해 준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 역시 어제 통화를 했는데요. 이런 표현을 쓰더군요. “죽다 살아온 느낌이다” “오랫동안 배 멀미를 하다가 이제 막 육지에 내려선 기분이다” 그간 아주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중동 카타르 등에서 많은 분들이 위로해주고 응원해주셔서 버틸 수 있었다”면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김바다 씨는 아들과 함께 만든 동화 ‘애플 드래곤’을 곧 출간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 지금까지 ‘잔혹동시 논란’의 당사자인 이양과 어머니의 입장을 들어봤는데요. 이번 논란에 대해 우리가 한 번 되짚어봐야 할 대목도 있을 것 같아요.
= 그렇습니다. ‘학원가기 싫은 날’은 비록 내용이 잔인한 측면이 있지만 강압적인 학원교육에 신음하는 아이의 절박한 호소를 담은 것이거든요.
아이는 그것을 시를 통해 표현했고 어머니는 그 시를 읽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까지 학원가기를 싫어하는 줄 몰랐다”면서 당장 영어 학원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양의 어머니는 이 시에 대해 "아이들을 숨 쉴 틈 없이 학원으로 내모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우화로 작품성과 시적 예술성이 있다"고 판단해 출간을 결정한 것이거든요.
이를 두고 고려대 강수돌 교수는 "아이의 정직한 표현에 엄마도 정직하고 성숙되게 반응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시를 통한 건강한 소통이 일어났다. 이런 소통이 사회적으로 더 확산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강 교수의 지적대로 우리 사회가 깊은 성찰은 외면한 채 아이나 부모를 섣불리 '패륜아'나 ‘사이코패스’라고 단정하고 시집을 폐기하도록 몰아붙인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큽니다.
▶ 그렇다고 이런 잔혹한 내용의 동시를 어린이에게 읽으라고 권장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 그것이 바로 '학교가기 싫은 날'에 대해 우려하는 분들의 입장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내용이 잔혹한 부분이 있어 어린이들이 읽으면 정서적으로 충격이 클 수 있습니다. 삽화도 어린이가 보기에는 괴기스럽습니다.
물론 어린이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은 문학교육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상업 출판은 이런 윤리적인 책임이나 사회적 반향을 고려해 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 저는 ‘통제와 규율 사회의 위험성’이란 제목으로 노컷뉴스에 실린 강남순 텍사스크리스천대 교수의 칼럼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그는 칼럼에서 이런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학교를 '감옥'으로 묘사한 그림을 그린 아이에게 선생님이 방과후에 남아 다시 그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선생님이 원하는 예쁜 학교 그림을 그려서 다시 제출했다고 하는군요.
그 다음부터 그 아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 아이는 미술시간에는 늘 '예쁘게,' 그리고 매일 일기장에는 '착한' 말만 써서 선생님에게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강남순 교수는 비정상적인 사회에 갇힌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만든 규율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며 동심을 통제하려는 것도 '아주 위험한 폭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아이들에게 ‘왜 이렇게 잔혹한 생각을 하느냐’고 나무라고 통제하기 전에 ‘마음이 아프다’는 그들의 호소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 요즘도 밤 10시에 학원버스에서 내리는 초등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OECD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10대 자살률 1위 국가입니다. 일 년에 250명 내지 300명의 10대 청소년이 자살을 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한 아이가 죽어도 온 사회가 고통스러워하며 근본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수백 명이 자살로 호소해도 우리는 '집단 불감증'에 빠져 냉담하거나 무관심하고 낙인찍는 일에 골몰합니다.
바로 이런 어른들의 태도나 사회적 분위기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끔찍한' 시를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이번 기회에 함께 생각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