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인터뷰 한 사람들은 문동환 목사·주진우 기자·최승호 PD·박주민 변호사·김승환 전북교육감·최문순 강원도지사·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정청래 의원 등 일반인은 쉽게 만나기 어려운 언론인·정치인·학자로 가득하다.
1인 미디어 <미디어 몽구>가 현장을 찾는, <아이엠피터>가 자료를 모아 분석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영광 시민기자는 (1인 미디어는 아니지만) 늘 사람을 만나 답을 구한다.
방송사 노조 위원장을 인터뷰하고, 해직 당한 기자들을 만나면서 자기만의 인터뷰로 한국 언론의 현실을 짚어본다. 세월호 침몰 사고 후 여론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을 때에, 그는 묵묵히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며 여론을 이어갔고, 세월호 사고 이후 기레기 취급을 받는 언론이 1주기를 맞아 얼마나 변했는지 듣기 위해 언론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 목사를 꿈꿨던 청년, 기자로 진로를 변경하다
주목할 사실은 그가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라는 점이다. 기사만 보면 언어와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아채기 어렵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1급 판정을 받은 그의 꿈은 원래 목사였다. 부모가 교회 사찰집사라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게 교회이고 목사였다. 때문에 신학까지 전공한 그지만, 기자로 진로를 변경한 것은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을 만나면서이다.
“2008년 라디오를 듣다가 변상욱 본부장(당시 대기자)을 알게 됐어요. 그의 싸이월드가 있는 것을 보고 방명록에 ‘방송 잘 듣고 있다’는 글을 올렸는데 답변을 달아줬어요. 기대도 안 했는데. 이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인터뷰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뜬금없이 제안을 했는데 언제든 오라는 거예요.”
“장애가 있는데도 시민기자를 해보고 싶다는 그 뜻을 높이 샀어요. 시민기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는 게 개인의 성장이 도움이 될 테니까요. 또 장애를 가진 그의 처지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과 만나는 사람이 어떠할지도 궁금했죠. 그래서 한번 만나 본다는 생각으로 응했는데, 이렇게까지 오래 할 것이라고는 솔직히 생각 못했어요. 저라면 5~6번 하고 그만 뒀을 것 같네요.(웃음)”
그렇게 생애 첫 인터뷰를 하게 된 이영광 시민기자는 이후 김현정 CBS PD 등을 인터뷰하며 그 내용을 <오마이뉴스>에 올리기 시작한다. 시민기자가 기사를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의 <오마이뉴스>를 통해 그의 글은 언론사 뉴스로 게재되고 포털 사이트에까지 송고됐다.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제가 쓴 글이 기사로 나오니까.” 그는 아직도 자신의 인터뷰가 기사로 나올 때의 첫 기분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그는 인터뷰어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 1시간 인터뷰 녹음 푸는 데만 7~8시간
뇌성마비 1급인 이영광 시민기자가 한 편의 인터뷰 기사를 완성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 컴퓨터 자판을 치는 속도가 느려, 보통 1시간 인터뷰를 하면, 녹음 내용을 들으며 풀기까지 약 7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지금은 숙달된 편이라 많이 빨라졌지, 초기에는 더욱 느렸다.
그렇게 푼 녹취는 인터뷰이에게 보내 팩트 확인을 받는다. 녹취를 풀다 생긴 추가 질문도 이때 함께 보내 답변을 받는다. 완성한 인터뷰 전문 앞에 인터뷰를 한 배경이나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서문을 작성해 <오마이뉴스>에 송고하는 데까지 다시 2~3시간이 소요된다.
이영광 시민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장비는 녹음기이다. 그런데 이 녹음기가 망가져서 곤혹을 겪은 적이 있다. 지난해 5월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과 세월호 관련 인터뷰를 했을 때 일이다. 인터뷰를 잘 마치고 집에서 컴퓨터로 옮기는데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녹음은 분명히 됐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정말 당황했죠. 어쩔 수 없이 박 회장에게 전화해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타이핑을 요청했어요. 무례한 부탁이었는데도 박종률 기자협회장이 흔쾌히 허락해 줬어요.”
지금 돌아봐도 아찔했던 기억이다. 이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는 인터뷰 시 늘 녹음기와 함께 휴대폰을 활용해 2중으로 녹음한다.
◇ "인터뷰 기사 송고 후에는 늘 아쉬움만 남아"
지난 6년을 돌이켜 보면 정말 많은 유명 인사를 인터뷰 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인터뷰 기사를 꼽아달라고 했더니 잠시 고민을 하다 ‘만족할 만한 기사가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만족스러운 기사가 없어요. 인터뷰 끝나고 나면 이걸 왜 이렇게 물었을까. 좀 더 다른 질문으로 접근했어야 했는데 등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인터뷰어로서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탓이다.
반대로 기억하기 싫은 인터뷰를 물었더니 바로 답변이 나왔다. 인터뷰를 하고도 기사를 못 쓴 경험이 있다.
지난해 초 이 모 의원을 인터뷰했다. 당시 신당으로 간 안철수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해서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이 의원을 인터뷰 하면서 안철수 의원이 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것에 대해 물었는데, 이 의원이 책상을 탁 치고 화를 내면서 인터뷰를 안 하겠다고 했다.
처음 겪는 당황스런 일이었다. 결국 그 질문을 제외하고 준비한 다른 질문으로만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터뷰 후 기존의 방식대로 녹취를 풀어 이 의원 측에 보냈는데 기사화하지 말라는 연락이 왔다. 아쉬웠지만 인터뷰이의 요청이니 기사를 올리지 않았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그 다음 날 이 의원의 비서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인터뷰한 녹음 파일을 지우라는 것이었다.
“기분이 나빴고, 모멸감마저 느꼈어요. 그래서 제가 따졌죠. ‘나를 뭐로 보는 거냐. 내가 뭐냐고 이딴 거 팔아먹을까봐 그러느냐’고 성질을 냈어요. 그 이후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하고 아예 연락을 안 하고 있어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 "직장인이 된 기자들, 안타까워"
인터뷰 초기에는 이 분야 저 분야 가리지 않고 유명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면 지금은 관심사가 언론으로 좁혀졌다.
최근 진행한 세월호 1주기 기획 ‘기레기는 변했나’라는 주제의 인터뷰는 그 방증이다. 그는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김지방 한국기자협회 조사연구분과 위원장, 김성수 뉴스타파 기자를 만났다.
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는 세월호 사고 직후 기레기 소리에 반성했다는 언론이 여전히 기레기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세월호 1주기 기획 인터뷰를 하면서 그대로라는 걸 느꼈어요. 작년 4월 말경에 단원고 3학년의 편지 있잖아요. ‘직업병에 걸린 기자들에게’라는. 그거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럽더라고요. 언론에서 반성문을 쓰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에요.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요. 달리 말해 지금 세월호와 같은 일이 일어나도 언론은 세월호 때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거죠.”
그의 비판에는 지난해 호평을 받았던 대안언론도 포함돼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대안언론도 일반언론과 별 차이가 없어요. 일부 대안매체의 경우 무조건 정권 책임으로 몰고 간 면도 있고요. 국민이 알고 싶은 건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인데 일부 대안매체는 그게 아니라 정권을 공격하기 위한 보도를 했죠. 유언비어가 양산되는 걸 대안언론이 취재해서 밝혀야 하는데 오히려 확신시킨 역할을 한 대안 매체도 있다고 보거든요.”
기자들을 향한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왜 기자가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단지 돈 벌려고 기자가 된 건 아닐 거란 말이죠. 근데 지금 기자들에게 언론관이나 사명감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돈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랄가. 그래서 하라는 것만 하죠. 그게 기자인가요, 직장인이지.”
◇ 매년 100명씩, 앞으로 인터뷰 1000명이 목표
언론과 기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지만 그것은 애정에서 나오는 쓴 소리이다. 여전히 그의 꿈은 정식 기자가 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언론사에 입사해가지고 시민기자가 아니라 정규 기자로 활동하면 좋겠어요. 시민기자는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요.” 정식기자가 돼서 지금보다 더욱 성역 없는 보도를 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하지만 그는 초조해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인터뷰를 해온 것도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인터뷰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 같아요. 은혜가 아니라면 설명이 안 돼요. 제가 인터뷰하는 분들이 유명한 분들이잖아요. 그런데 전 정식 기자도 아니고 시민기자란 말이죠. 그런 분들을 만나는 게 제 힘으로 불가능할 거예요. 하하가 무한도전 토토가 다큐에서 "신이 채워주시는 거 같다"고 했는데 저도 그래요.“
언론사에 언제 입사해 정식기자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계속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다. 우선 눈앞의 목표는 매년 인터뷰 100개씩을 진행해 1000개를 채우는 것. 그때까지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