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저녁 열린 의원총회 뒤 "여야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합의한 합의문이 다시 변형되는 선례를 남기는 건 옳지 못하다. 그래서 더 이상 (야당에) 양보를 않기로 했다"고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합의문'이란 지난 2일의 국회 공무원연금 개혁특위 합의문이고, 여기에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조항이 없다. '야당에 대한 양보'란 이날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공적연금 사회적 기구 운영규칙상 부칙의 별지에 50% 조항을 적시한다"는 약속이다.
그동안 여당은 '특위 합의문에는 50% 조항이 없으므로 50%를 강제해선 안된다', 야당은 '50% 조항이 담긴 실무기구 합의안을 존중하기로 한 만큼 조문화가 필요하다'고 맞서왔다.
이를 절충한 합의안이 '별지 적시안'이었으나 이를 새누리당이 파기한 셈이 됐다. 의원총회에 앞서 "여당이 '별지안'을 추인하지 않으면 이후 모든 의사일정을 보이콧하겠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쪽 통첩이 있었던 만큼, 여당은 결국 연금개혁 무산을 각오하고 합의를 내던진 게 됐다.
김 대표는 의원총회 뒤 "오늘 꼭 통과시켜야 할 게 (연말정산 환급을 골자로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이다. 또 꼭 필요한 다른 법안들 처리를 위해 야간에라도 본회의를 열어줄 것을 국회의장에게 부탁드리겠다"며 "야당이 불참하면 단독으로라도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의화 국회의장이 "대법관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 해줬는데 더 이상은 못한다"면서 본회의 속개를 거부해 불발됐다. 새누리당으로서는 박상옥 대법관 임명동의안 단독처리 말고는 이날 다른 성과를 하나도 내지 못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새누리당의 '별지안 거부' 확정 뒤 열린 의원총회에서 "오늘 새누리당은 야당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저버렸다.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통해서 어렵게 합의한 내용을 오로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여야는 일단 이달 안으로 '원포인트 국회' 등 단기간 의정을 이어가면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소득세법 개정안, 지방재정법 개정안 등 시급한 현안을 처리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따라서 이르면 이달 안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여야의 논란도 봉합될 수 있을 전망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6월국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안들이기 때문에 이달 15일 이전에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도 오는 11일 개회 예정으로 '5월임시국회'를 소집하자는 요구안을 내기로 했다.
다만 향후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과정에서 칼자루를 쥐는 쪽은 야당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처리시한이나 처리 전제조건 합의를 여당이 깬 이상, 협상력 면에서 야당이 유리해질 공산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평가다.
지금까지 협상과 관련해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데, 야당에게 끌려다녔다"(김태흠 의원)던 당내 불만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