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표는 지난 4일 “우리 당이 호남에서 누려왔던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겠다”며 ‘텃밭’에서 패배한 데 대한 책임감을 피력했다.
하지만 호남 출신 의원들은 “광주 방문 사실과 발언 내용 모두 사전에 지도부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며 문 대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고수했다.
향후 당내 내분 기류를 수습하고 통합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文, “회초리 맞는 심정으로 왔다”…천정배발(發) ‘호남정당론’ 경계
문 대표는 지난 재보선 기간 여섯 차례 방문한 광주 서을 지역구를 다시 찾아 노인회관 등을 돌며 지역 주민들의 ‘쓴소리’를 들었다.
그는 서창동의 한 경로당에서 노인들과 간담회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 광주시민들 또 국민들은 우리 당에 아주 쓴 약, 아주 아픈 회초리를 주셨다”며 재보선 패배 문제를 언급했다.
문 대표는 “우리 당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더욱 크게 혁신하고, 더 크게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혁신의 방법론에 대해선 “대표인 저부터 기득권을 내려놓는데 앞장서겠다”며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서 함께 하는 노력을 열심히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내려놓을 ‘기득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우리 정치의 지역분할 구도 속에서 호남에서 일종의 기득권 정당처럼 인식돼 온 측면이 있다”며 “호남에서 누려왔던 기득권을 내려놓고 뼈 속부터 환골탈태하겠다”고 대답했다.
호남 지지층에 대한 안이한 판단 때문에 광주 서을과 ‘서울의 호남’으로 불리는 서울 관악을 등에서 패배한 인정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재보선을 전후해 당 안팎에서는 “참신하고,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지 못하면 천정배 의원, 정동영 전 의원 등의 출마로 생긴 야권 분열 구도를 깨지 못한다”는 조언이 이어졌었다.
그러나 문 대표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사패불사론(四敗不辭論·재보선 4곳을 모두 패해도 마다치 않겠다)’을 펴며 전략공천 등을 거부한 채 자기 식으로 공천에 임했다가 전패했다.
따라서 “호남에서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은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며 보였던 안이한 태도와 공천 실패에 대한 반성으로 읽힌다.
문 대표는 천 의원과의 연대 가능성은 일축했다. 특히 천 의원이 ‘호남 신당’ 창당 의사를 시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광주시민들이 분열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며 “호남뿐만 아니라 호남 바깥에서도 이기는 정당이 되겠다”고 했다.
◇ ‘문재인 체제’ 흔드는 비주류·호남세력…“원탁회의 만들자”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재보선 패배를 겨냥한 '문재인 책임론'이 쏟아지기도 했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선거 참패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중에 친노 패권정치에 대한 국민의 경고라는 것이 많은 분들의 지적”이라며 이른바 ‘친노(親盧·친노무현) 패권주의’의 폐단을 다시 거론했다.
주 최고위원은 “그동안 우리당에 친노가 없다고 했는데, 과연 없나”라며 반문한 뒤 문 대표를 겨냥해 “당 대표가 되면 친노에 불이익을 준다고 했는데 취임 이후에 불이익 받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만약 문 대표가) 책임지고 물러나지 않겠다면 패권정치를 청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문 대표에게 “선거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패권정치 타파, 원탁회의 개설 등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주 최고위원은 원탁회의에 대해 “최고위원회의와 별개로 문 대표 외의 당내 대권주자까지 포함시킨 논의단위”라고 설명했다.
당 대표 위주의 중앙집권적 당내 권력구조를 집단지도체제로 분산시키자는 주장이다.
유승희, 추미애 최고위원 등도 공천 실패, 호남패배 책임론 등을 거론하며 문 대표 흔들기에 동참했다.
유 최고위원은 “호남 유권자에 석고대죄한다”며 “평생 2번(새정치연합의 기호)을 찍은 분들이 혼란과 갈등을 느끼게 하고 투표장 들어가서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광주에서의 참패는 더 이상 ‘나눠먹기 공천’이 안 되며, 지역민과 국민이 원하는 사람을 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 최고위원도 공천 실패를 재보선의 주요 패인으로 지적하며 “경선과정에서 기계적으로 공천한다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를 안 했다”고 꼬집었다.
당내 비주류 의원들은 문 대표의 독자적인 호남 방문에도 곱지 않은 시각을 드러냈다.
한 호남 출신 중진의원은 5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광주 방문 역시 지도부와 논의 없이 결정된 것으로 안다”며 “호남 공천에 문제가 있었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한다면 제발 지도부와 먼저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범주류에 속하는 한 당직자는 “언제부터 당 대표가 일정 하나하나를 보고하고 다녔느냐”며 불편한 심리를 드러내며 반박했다.
당내에서는 “어수선한 당 분위기를 수습하고 분열을 잠재우기 위해 '통합' '탕평'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며 문 대표의 리더십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