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김홍빈 대장을 카트만두 타멜(Thamel) 모 호텔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김 대장은 피로에 지친 기력이 역력했고 한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내내 깊은 기침을 쏟아냈다. 표정은 푸근했지만 고립됐다 하산하는 과정이 녹록하지 않았음을 몸이 보여주고 있었다.
김홍빈 대장이 이끄는 2015 한국로체원정대(6명)는 해발 5400m에 위치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대지진 참사를 겪었다. 7.8 강진이 네팔을 덮쳤을 때 원정대는 점심식사를 준비중이었다. 땅이 크게 흔들렸지만 가옥이 없는 베이스캠프였던 만큼 김홍빈 대장은 당시 대지진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조금 뒤 지진 충격파에 의한 눈사태로 약 1km에 걸쳐 펼쳐진 베이스캠프는 쑥대밭이 됐다. 다행이 한국인 로체원정대는 베이스캠프 위쪽에 자리를 잡아 휩쓸려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텐트와 장비 등을 모두 잃었다. 눈사태로 중국인 원정팀 등 18명은 이곳에서 숨졌다.
로체원정대는 옷가지도 없이 달랑 침낭만 가지고 맨몸으로 해발 5288m에 있는 고락셉 롯지로 하산을 시작했다. 먼 거리였지만 고소적응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2시간만에 고락셉 롯지로 도착할 수 있었지만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고락셉 롯지는 다행히 지진의 피해를 빗겨갔다.
제대로 된 옷가지도 없이 추위와 싸우며 고락셉에서 이틀을 머문 원정대는 이후 걸어서 로부체(4930m)를 거쳐 페르체(4243m)에 27일 오후 2시쯤 도착했다. 로부체와 페리체 롯지는 절반 이상이 무너져 있었고 그제서야 김 대장은 상황이 심각함을 인식했다.
한국인 부상자 소식이 전해지고 히말라야에 고립된 국내 산악팀들의 안전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지만 원정대는 외교부나 주네팔 대사관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문자는 받았다. '추가 여진이 우려되니 건물이 아닌 밖에서 생활하라'는 취지의 문자였다.
하지만 외교부와 대사관으로부터 비슷한 문자는 반복됐다.
김홍빈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는 28일 오후에 에이전시인 세븐서밋이 투입한 헬기를 타고 남체(3440m)를 거쳐 에베레스트 관문이자 공항이 있는 루크라(2800m)로 겨우 빠져나왔다. 역시 외교부와 대사관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대신 외교부와 대사관은 원정대원들에게도 '30일 오전 대한항공 특별기가 카트만두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니 탑승을 원하는 한국인들은 신청하라'는 '업그레이드' 문자를 보냈다.
대원들을 다독이던 김홍빈 대장도 이 때만큼은 화가 많이 났다고 했다.
김 대장은 "30일에 특별기 제공이 있었는데 전날 문자를 보내면 뭐합니까? 산에 있는 사람들이 뭘 어떻게 해요? 문자를 보니까 화만 나지요"라고 말하며 푸근했던 얼굴을 살짝 찌뿌렸다.
김 대장은 이어 "산에 고립된 사람들을 외교부가 끌어내 줄 생각을 해야지요, 대사관은 자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카트만두 국제공항에 각국 대형 국적기들이 구호품을 실어온데다 루프라에도 많은 나라들의 원정대와 트레커들이 대기하면서 한국로체원정대는 이틀을 그곳에서 더 머물러야 했다. 날씨도 나빴다. 한국로체원정대는 이곳에서 카트만두까지는 경비행기와 대형비행기를 차례로 갈아타야했다.
이 과정에서 자존심도 상했다. 또다른 한국 원정대이자 시각장애인 송경태 대원이 포함된 전북팀이 뒤늦게 도착한 체코원정대에 비행기 자리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 전북팀은 26일부터 5일간 루크라에서 대기했지만 체코대사관이 직접 나서 협조를 요청한 체코팀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는 소식이 전북팀으로부터 로체원정단에 전해졌다.
"체코팀에게 전북팀이 자리를 빼앗겼다고 해요, 어제 첫 비행기로 나와야했는데 밀려서 마지막 비행기로 더 늦게 들어왔어요, 저도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우리보다 못하는 체코도 저러는데 우리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라고 하면서..."
"네팔 만큼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대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도전하는 것 멋지잖아요?"
김 대장은 대지진으로 고립됐다 하산하는 전과정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런 대재앙에 우리팀만 수습하고 빠져나오는 게 맞을까''다른 나라 산악인들이 죽었는데 나만 살려고 내려오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신을 괴롭혔다고 했다.
하지만 김홍빈 대장은 대원 모두를 카트만두까지 무사하게 이끌었다. 김 대장을 포함해 많은 대원들이 현재 몸져 누워있다. 잦은 기침과 몸살을 호소하고 있지만 베이스캠프에서 모든 장비를 잃어버려 제대로 된 한국 의약품조차 없다. CBS취재진은 김 대장에게 기본적인 의약품을 가져다주기로 약속했다. 더 필요한게 없냐고 물으니 "그거면 됐다"고 말했다.
김홍빈 대장이 이끄는 '2015 한국로체원정대'도 이번 네팔 지진과 관련해 복구지원 및 모금활동을 진행중이다.
산악인 김홍빈 대장은?
196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만능스포츠맨으로 대학 2학년 때 광주전남암벽대회에 출전해 2위를 차지했다. 1989년말 동계 에베레스트 원정에 이어 1990년 낭가파르밧 원정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1991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에 발탁돼 매킨리를 공략하던 도중 조난을 당했고 온몸에 동상을 입어 양손가락 10개를 잘라냈다. 한동안 방황했지만 김홍빈 대장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 아시아)를 비롯해 아콩카과(6959m 남미), 매킨리(6194m 북미), 킬리만자로(5895m 아프리카), 엘브루즈(5642m 유럽), 칼스텐즈(4884m오세아니아), 빈슨매시프(4,897m.남극) 등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정복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안나푸르나(8091m 네팔), k2(8611m 파키스탄), 초오유(8201m 티베트) 등 8000m 이상 히말라야 14좌 중 9개를 정복했다. 이번에 로체(8516m)에 도전하다 하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