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 함께 무너진 네팔노동자들의 코리안드림

빠듯한 생활 견뎌가며 네팔에 집 장만했건만…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네팔문화원에 마련된 분향소 (사진=김광일 수습기자)
"집만 장만하면 가족들이 안전할 줄 알았는데…"

지난 2009년 한국에 와 설탕공장과 도금업체 등에서 일했다는 네팔인 모호라(28) 씨는 모국의 대지진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그의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카트만두 인근 다딩 마을에 그가 장만했던 집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버렸다.

"먹고 싶은 것 참고, 입고 싶은 옷 안 사고" 빠듯한 생활비만 남긴 채 매달 100만 원씩 네팔의 가족들에게 보내, 6년만에 마련한 첫 보금자리였다.

그는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만든 집이 갑자기 다 날아가버렸다"고 말하고, "마을 전체에 건물 한 채 남아있지 않다 한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더 큰 피해는 면해 천만다행이라는 모호라 씨는 가족들의 안전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전화 연결이 잘 되지 않아 여태껏 가족들과 세번밖에 통화를 못했어요. 네팔로 돌아가는 친구들에게 '우리 가족과 마을 사진을 꼭 찍어와달라'고 부탁하고 있어요."

카트만두로부터 동쪽으로 44㎞ 떨어진 멜람치 인근 바우네 빠띠버잔 시장 마을이 지진으로 인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카트만두=CBS노컷뉴스 장성주 특파원)
서울시청 인근의 인도음식점에서 일하는 커드카(30) 씨도 마찬가지.


8년간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4년 전 카트만두 인근 빔둥가 마을에 집을 지을 수 있었지만 이번 사태로 폭삭 무너져내렸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 뒤 오전엔 네팔대사관 식당, 낮엔 음식점, 그리고 밤에는 다시 대사관을 오가며 땀흘린 결과물이 허망하게 사라진 것이다.

그는 "아직 1000만 원의 대출금이 남았는데 허탈하다"면서 "다시 새집을 마련하려면 10년은 더 걸리지 않겠냐"고 씁쓸해했다.

주한 네팔문화원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인은 2만 9,000여 명.

이들 가운데 이번 대지진으로 가족을 잃거나 피해를 입은 상당수가 곧장 귀국길에 올랐지만, 모호라씨나 커드카씨처럼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이들도 많다.

가족들이 무사한 경우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휴가를 쓰기가 쉽지 않은 데다, 네팔에 한 번 다녀오는 비용을 차라리 송금해주는 편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국에 머물면서는 슬픔을 드러내놓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지난 29일 낮 종로구 원남동의 낡은 건물 3층에 자리잡은 네팔문화원을 찾았을 때도 한쪽 벽에 설치된 분향소 앞에 모여앉은 네팔인은 네명뿐이었다.

말없이 눈물만 떨구던 등가네(25) 씨는 "네팔인 대부분이 낮에는 일을 한다"며 "한국에 온 지 한 달밖에 안돼 아직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 잠시 들렀다"고 말했다.

등가네 씨를 포함해 지금껏 이곳을 찾은 네팔인은 60여명 남짓.

돈 벌기에 더욱 바빠진 이들에겐 고향 동포들에 대한 추모도 시간을 쪼개야 하는 형편인 셈이다.

비노드 쿤위 주한네팔인협회장은 "가족들과 아예 연락두절되거나 사망 소식을 접한 이들은 대부분 네팔로 떠났고, 그나마 생존이 확인된 이들은 남아서 참고 일하고 있다"면서 "걱정은 되는데 가족을 만날 수도 없어 잠도 잘 못자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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