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고 경남기업 성완종 전 회장이 숨지기 전 작성한 메모,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증거가 되기 어렵다고 발언해 메모의 증거능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홍 지사가 '성완종리스트'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이 자신을 겨냥한 수사를 진행하는 데 대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다.
홍 지사는 지난달 30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성 전 회장의 메모는) 망자와의 진실게임”이라며 돈 전달자로 지목된 윤모씨에 대해서는 “사자(死者)의 사자(使者)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망자와의 진실게임을 하니까 반대신문권을 통해 진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고인이 앙심을 품고 자살하면서 남긴 메모 쪼가리(쪽지) 하나가 올무가 되어 지금 나를 옥죄고 있는데 이 올무가 곧 풀리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홍 지사는 전날에도 “메모의 진실성 여부에 대해서는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일방적으로 증거로 삼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 지사의 이같은 주장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모두에게 해당하기 때문에 리스트의 증거 능력 인정 여부는 수사팀으로서도 반드시 확인해야 할 문제이다.
법조계 의견을 종합하면, 홍 지사의 발언은 성 전 회장의 메모가 소위 '전문법칙'에 명시된 '증거로 삼기 어려운 경우'에 해당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형사소송법 제312조와 313조, 314조에 담긴 ▲ 법정에 직접 나와 얘기하지 않은 증거 ▲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는 증거 ▲신용성의 저항(믿을만하지 않은 것)이 있는 증거의 경우 증거로 삼기 어렵다는 내용 등을 전문법칙이라고 한다.
어떤 인물이 메모에 상대를 비판하는 내용을 적어놓고 사망했을 때는 변호인들이 해당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반대신문을 하는 이른바 '탄핵하는' 행위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홍 지사의 경우 성 전 회장이 이미 고인이 돼 버려 소위 '탄핵'을 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등의 전문법칙을 근거 삼아 "(메모를) 증거로 삼기 어렵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수의 법조계 인사들에 따르면 제314조에 명시된 '증거능력에 대한 예외' 조항 때문에 성 전 회장의 메모는 형사소송법의 증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해당 조항에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진술을 요하는 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조서 및 그 밖의 서류를 증거로 할 수 있다. 다만, 그 진술 또는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한다'고 돼 있다.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증거라면,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도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의 경우 수사팀이 대검 디지털 포렌식 센터 감식을 통해 '자필'로 확인받으면서 1차적인 신빙성은 입증된 상태다.
경남기업과 임원들 자택 등에 대한 3차례에 걸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성 전 회장의 행적을 담은 다이어리(일정표)와 또 다른 메모 등 자료와 관련자들 소환을 통해 확보하고 있는 진술도 있다.
다만 성 전 회장의 경우도 홍 지사가 말한대로 "앙심을 품고 자살하면서 남긴" 메모로 봐야하는지는 사실관계를 따져볼 부분이다.
통상 메모나 비망록 등에 적힌 내용에 대해 증거로 활용할 지 판단하는 경우 '누군가의 협박이나 사주에 의해 쓰여진 것인지', '일부러 악의적인 목적으로 근거 없이 쓴 것인지'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판사는 "망자(성 전 회장)의 메모가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한 것이라면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다"며 "이러한 상태에서 작성된 것인지는 검찰이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입증을 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다른 판사도 "검찰이 구체적인 다른 정황과 관련자 진술 등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며 "이러한 증거들이 얼마나 많은 신빙성을 담보하느냐가 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