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마음을 훔친 아베 연설의 수사학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9일(현지시각) 미 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유튜브영상 캡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9일(현지시각) 미 의회 연설에서 세계2차 대전 중 사망한 미군에 대해서는 '깊이 회개하며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전날 워싱턴DC에 있는 세계2차대전 기념관을 찾아 "젊은 미국 청년들이 숨진 것에 대해 깊이 회개(repentance)하며 묵념했다"며 "일본과 일본 국민을 대표해 심오한 존경을 담아 제2차 대전 중 숨진 미국인에게 영원한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이전처럼 '깊은 후회(remorse)'를 느낀다며 "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행동으로 아시아 국가들에게 고통을 끼쳤다"고 반복했다.

회개나 후회나 한국말로 옮겨놓으면 비슷할 수도 있지만 미국인들이 받아들이는 단어의 무게는 서로 다르다. 후회(remorse)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에 그치지만 회개(repentance)는 양심의 가책을 넘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자아의 본질적 변화를 뜻한다.

특히 기독교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는 'remorse'보다는 'repentance'를 더욱 강도 높은 반성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아베는 2차 대전의 적이었던 미국에 대해서는 'repentance'를 사용하면서도 미국보다 더욱 심한 고통을 당한 많은 아시아 식민지 국가들에 대해서는 'remorse'로 대신했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요구했던 '사과'(apology)는 당연히 없었다.

대신 "역사는 참혹하다.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what is done cannot be undone)"이라며 미국과 함께 세계 평화와 안보에 일본이 기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은 입장은 '과거(역사문제)가 미래(대중국 봉쇄와 북핵 해결)를 발목 잡아서는 안 된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다.

아베의 이날 연설이 미국인들에게 '입속의 혀'처럼 부드럽기 그지없었던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은 아주 멋진(awsome)나라다"
"농부와 목수의 아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며, 그런 미국이 일본을 일깨웠다. 일본이 미국을 만난 것은 민주주의를 만난 것이었다"
"세계2차 대전 이후 잿더미 일본에게 미국은 우유와 염소와 스웨터를 보내 주었고, 미국시장을 개방해 일본에 가장 큰 이득을 주었다"
"미국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전후 세계의 평화와 안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영원히 미국을 지지할 것이다"
"일본 대지진 때 미군이 달려와 일본 사람들을 구조했다. 미군은 희생자들과 함께 눈물을 흘려 주었다. 캐롤 킹의 노래 '힘들고 흔들릴 때 눈을 감고 나를 생각하세요. 나는 당신의 깊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같이 있을 거예요'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가입을 위해 자국 농업을 개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일본 농업은 내리막길이다. 농촌 평균 연령이 60대다. 일본 농업은 개혁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개혁해야 한다"

미국이 TPP협상 타결을 위해서는 일본의 농축산물 시장을 더욱 개방해야 한다고 요구해온 점을 감안하면 미국 정치인들의 구미를 당기는 말이다.

하지만 아베의 '달달한 연설'이 '아시아 중시전략'을 추구하는 미국에게는 오히려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고 일부 서방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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